산과 삶이 닮았다는 건

by 가은


새해가 밝았어. 너를 만나는 그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뭉클해져. 매번 새해가 되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앞섰는데 이번만큼은 달랐어.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오래도록 마음에만 품고 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거든. 한겨울의 한라산 정상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 말이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추위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으로 향했어. 서울의 자그마한 산만 타본 적 있는 내가 한라산이라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지.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모자에 랜턴을 달고 새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운 채,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간에 발을 내디뎠어. 장갑을 꼈는데도 바람이 매서워 손발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얼어붙은 등산로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올랐어. 마치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듯 참 잘 왔다고, 여기까지 온 게 대견하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해가 뜬 한라산 설산의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어. 까만 나뭇가지마다 하얀 옷이 내려앉아 있었고, 세상은 한순간에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고요했지.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풍경 속을 직접 걸으며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게 참 따스했어. 힘에 부치면 중간중간 마련된 대피소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며 숨을 고르고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했지.


사람들이 왜 산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걸었어. 산을 오르는 일은 삶을 살아가는 일과 참 많이 닮아 있더라. 미끄러운 오르막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앞이 깜깜해 막막해도 결국 해는 뜬다는 것도,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정상에 닿는다는 진리도. 중간중간 스쳐 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헤어지면서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되는 순간들도, 가끔은 멈춰서 풍경을 둘러보고 쉬어가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너무나 닮아있었어. 끝없는 길을 오르며 다짐했어. 2026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른다는 불안에 매달리기보다, 이 여정 자체를 살아내며 즐기자고. 언젠가는 정상이 있고 또 내리막길이 있겠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만난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필요할 땐 대피소에 앉아 숨을 고르며 천천히 가자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그 순간은 행복, 그 자체였어. 안개가 짙어 백록담의 선명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어. 2025년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거든. 누군가 만들어둔 눈사람 옆에서 사진을 찍고, 대피소에 앉아 몸을 녹이며 준비해 간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어. 잠시 후엔 산은 올라간 만큼 그대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채비를 했어. 꽝꽝 얼어붙은 길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려웠어. 한 발만 잘못 디뎌도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미 한 번 걸어본 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막연함은 없었어. 그렇게 조심스럽게 끝내 무사히 하산했어.


그래서 2026년의 시작이 유난히 신나고 행복해. 2024년에 아팠기에 2025년에는 건강하게 살겠다고 다짐했고, 잘 자고 잘 먹는 습관을 만들고 운동하며 체력을 쌓아왔지.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한겨울 한라산을 꿋꿋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마음먹는 일보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가 너무나 자랑스러워.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올해를 살아가보려고 해. 혹시 그때의 네가 무엇이든 불안하고 스스로를 미덥지 않게 느낀다면 이 하루를 떠올려줘.


2026년의 시작에서,
누구보다도 네 행복을 바라는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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