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가 비슷한 상황에서 유지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친하게는 지냈지만 '굳이' 방학에 연락을 해서 따로 만날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학교나 학원 등 나의 '본업'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나는 장소에서만 우리의 관계에 아주 충실했다.
특히, 시험이 끝나고 따로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부탁은 학창시절 내내 거절하기 일쑤였다.
어릴적부터 원래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잘 지냈기 때문에 이러한 나의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고 만나자는 제안도 매번 거절하다보니 오래 지속되는 인연의 친구들은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친구가 없는 나에게, 정말 고맙게도 매번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원을 다닌 적도 있었으며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비슷한 가정환경을 갖고, 비슷한 성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대학교에 진학했었다.
그 친구가 유일한 나의 학창시절 친구였는데, 내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처음으로 먼저 연락을 했을 때도, 한 걸음에 달려나와 자신이 망가진 사진을 보여주며 날 웃기려고 했고 늘 내가 힘들 때마다 편하게 연락 할 수 있는 친구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만나고 지낼 수 있었던 건 모든게 비슷한 환경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쯤부터 나는 이 친구와의 관계가 불편해졌다.
취업준비로 바빠서 몇 개월동안 서로 연락이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개군날돌들막, 너 이번 토익 900점 넘었어?"
"아니, 아직~ 넌?"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친구는 토익점수 900점을 넘기 전까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나보다 빨리 취업을 했고, 내가 자소서를 써내려가던 어느 밤 자기가 힘든 일이 있으니 술한잔을 하자고 날 불러냈다.
난 거의 유일한 친구인 그녀에게 힘든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감기한이 코앞인 자소서를 급하게 마무리하며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집 앞으로 나갔는데, 자신의 루틴한 회사 일상과, 대표님이 자신의 생일을 직접 챙겨주지만 이제 막 출근 2개월차라 회사생활이 힘들다던 그녀의 반자랑, 반투정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부러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대학교생활 내내 나는 전공때문에 운 좋게도 고소득인 아르바이트를 금방금방 구할 수 있었고, 그녀보다 상대적으로 넉넉했기에 우리가 만나면 내가 밥을 산 적이 훨씬 많다.
나는 내심 그녀가 먼저 취업을 했고,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힘들다며 먼저 술을 마시자고 했기에 한 번은 친구가 사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지만,
그녀는 "정확히" 백원 단위까지 나와 더치페이를 했다.
얼마 안있어 나는 전반에서 이야기를 풀었던 '괴롭힘'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그 친구는 나의 회사에 대해 위치, 연봉, 기업 규모, 복지 등 질문공세와 더불어 묻지도 않는 나에게 자기 회사의 자랑을 막 늘어놓았다.
이렇게 미묘하게 그 친구가 나와 자신을 저울질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자,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가 너무나 불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