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시장에 갔다가
닭 냄새만 실컷 맡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를 세워 두었던 곳에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어디선가 빵을 굽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부패되고 있는 닭들 냄새를 맡다가, 막 구워지는
빵 향기를 맡으니 갑자기 코가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내 레이다에 포착된 것은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려고 손에 들고 있는 노란색 얇고 긴 빵이었다.
하얀 종이에 싸인 얇고 긴 빵을 아이는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와 아버지 바로 뒤에 '얇고 긴 빵'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캄보디아어로 쓰여 있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곳에서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트럭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일행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한눈으로 보면서도 나는 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멀어져 가던 일행들이 멈칫하며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이 냄새가 나지?"라고 선교사님이 말했다.
나는 즉시 그 빵을 굽고 있는 트럭을 가리키며, '저기입니다.'라고 알려드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트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일행은 순식간에 트럭에 모였고, 우리는 네 개를 주문했다.
아저씨는 까맣고 통통한 손으로
조그맣게 반죽된 덩어리를 꺼내어 얇게 폈다. 순식간에 몇 십배로 커진 밀가루 반죽은
얇은 팬 위에 올려졌다.
취이이 이익 기분 좋게 빵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곧 계란을 탁 깨뜨려
쿨하게 흰자는 길에다 버리고
노른자만 빵 위에 올렸다.
그리고 노른자를 주걱으로 넓게 펴 발랐다.
그 위에 마가린을 한 숟갈 퍼서 놓고 바로 뒤집어 버렸다. 가운데 있는 마가린 때문에 빵이 불쑥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하면서 굽히는 동안 아저씨는 또 다른 반죽 덩어리를 꺼내어 얇게 펴고 있었다. 아저씨의 손이 현란하게 보였다.
어느 순간 빵은 사다리 꼴 모양으로 각을 잡고, 하얀 종위 위에 얹혔다. 기름기가 흐르는 빵에는 통조림에 구멍 세 개를 뚫어 한 번에 세 줄기가 나오는 연유와 함께 초코 가루가 올라갔다.
아저씨는 딱 세 번 접어서 종이에 싸인 빵을 우리에게 건넸다. 종이를 찢어 '얇고 긴 빵'을 한 입 물었다. 우리 일행 넷은 다 같이 탄성을 질렀다. '와~' 하면서 순식간에 그 빵을 먹어치웠다.
바삭한 듯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에서 계란과 마가린의 고소한 향기가 나고, 달달한 연유와 초코 가루가 더해지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입 만에 사라진 빵을 추억하고 있었다.
과연 이 빵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넓게 펴서 가운데 생크림과 과일을 넣는 크레페를 떠올리고, 그 빵을 크레페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시장에 가는 날마다 우리는 '크레페를 파는 아저씨'를 찾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마치 신기루 같았다.
찾으면 찾을수록 눈 앞에 아련할 뿐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 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크레페를 팔고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환영처럼 지나가 버렸다.
어느 날에는 심지어 크레페 아저씨가 서있던
그 자리를 맴돌며 주위 상인들에게 크레페 아저씨의 위치를 추적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크레페의 이름은 '로띠'였다.
얇고 긴 빵을 로띠라고 부르는 듯했다.
로띠 아저씨 찾기를 포기했을 무렵,
한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잠깐 시장에 들렀다.
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사려다 차를 돌려 그냥 돌아가는 길이었다.
골목에 들어섰는데, 유미 선교사님이
"어! 저기 로띠 아저씨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설마'하고 기대를 하면서도 반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로띠 아저씨는 나에게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가 가까워질수록 아저씨의 까무잡잡한 얼굴과 통통한 몸매가 자세히 보였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로 그 로띠 아저씨였다. 기억 속에 파묻혀 가던 로띠 아저씨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민 선교사님은 창문을 내리고 로띠 아저씨에게 말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이랬을 것이다.
"로띠 아저씨!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그동안 어디서 있었어요?
매일 시장 올 때마다 아저씨 찾아다녔어요.
우리 엄청 많이 먹을 거예요. 로띠 많이 만들어 주세요. 여기다 주차할 수가 없으니, 주차하고 나서 우리 처음 만났던 골목으로 갈게요.
거기서 만나요. 꼭! "
내가 로띠 아저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비록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날 나는 로띠 일곱 개를 주문했다.
같이 간 선교사님들 것과 집에 있는 전도사님, 전도사님 친구 것까지 샀다. 그리고 세 개 더 샀다. 한국에 가서 생각이 안 날 만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넉넉히 사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다.
로띠는 하나에 0.5불이니까 3.5불의 행복이었다.
사실 로띠를 알게 된 기쁨과 행복을 돈으로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따리음 마을을 떠나 씨엠립의 화려한 야시장에서 사 먹은 팬케이크(그곳에서는 로띠를 팬케이크이라고 불렀다)와 비교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씨엠립의 팬케이크는 캄보디아 돈으로 5000리엘이니까 약 1.25불이었다.
얇게 썬 바나나와 초코 시럽을 듬뿍 뿌려주셨다.
그런데 이미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기름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본 탓인지 느끼해서 하나도 다 먹기가 힘들었다. 마음속에서 아련하게 남아 있던 로띠의 추억을 망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사그라들기 전,
온갖 냄새가 난무하는 시장 한 코너에서
취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얇은 로띠를 굽고 있는 로띠 아저씨.
마스크를 끼고, 흐르는 땀을 한 소매에 닦아가며, 통통한 손으로 반죽을 넓게 펴던 그 로띠 아저씨.
그는 내게 로띠를 파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로띠의 추억을 선물해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