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지분을 위하여

가부장제의 최전선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입니다

by 미리내

격정의 비바람이 멈추고 먹구름이 걷히면 맑은 하늘이 서서히 드러난다.

내 마음은 격정의 회오리였다.

사는 내내 알 수 없어 힘들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 있었다. 말보다는 눈물이 먼저 나와 당황했던 순간들.

글을 읽고 글을 쓰며 감정의 기록들을 엮어 나가자 내 눈앞에 내 세상이 보였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자기의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글쓰기의 최전선---


어려서는 어린이어서 내 소리가 묵살되었고 결혼을 한 후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친정의 부제로 내 존재가 부정당했다. 나의 친정은 친부와 계모로 이어져 있는 관계였다. 시댁의 눈에는 이 관계가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시댁에서의 내 자리, 내 위치는 없었고 그런 의미로 내 목소리는 나 자신을 위한 목적이 아닌 남편, 아이들, 시부모를 위한 언어들로 채워져 갔다.

"너는 왜 우리 가족 같은 느낌이 안 드냐?"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나를 정면으로 부정하신 질문이었다.

'아, 내가 문제인가? 다른 식구들과 별다를 것 없이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

'내가 더 살갑게 다가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나?'

나 자신을 검열하며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수없이 고민하고 되뇌며 시부모의 '사랑'과 '이쁨'을 받기 위해 더 챙기려 노력하였다.

그러는 사이 원인도 찾지 못한 채 나의 상처는 곪아갔다.


그러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책을 신문 기사로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글 구성을 소개하는 지면을 읽으며 이 책에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책을 구입하여 읽는 동안 여성 안에는 자신도 모른 채 자리 잡은 '내 안의 가부장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내 안의 가부장제'는 '우리 안에 내면화된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 심리는 종종 '죄책감'이나 '미안함'이라는 감정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 경우가 이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 안에 잠겨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시어머니의 질문은 내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하였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나 자신을 더 위축시키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나를 위한 언어는 가부장제에서 더 사그라들었다.


악인은 없지만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구조의 문제에 눈 돌리게 된다.
---다가오는 말들---


이제는 시어머니의 그 질문이 나에게 문제가 있지 않음을 안다.

내 노력이, 내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내 원가정이었던 친정은 한국사회의 틀 안에 정해진 정상가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댁이 정해놓은 가족의 틀 안에도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가족이지만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해 보이라는 압박과도 같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악인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로 인해 고통받았다. 하지만 이 고통이 오롯이 그녀의 잘못된 인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녀도 태어나서 일흔여섯이라는 긴 세월을 여자로서 희생하는 삶만을 강요받은 '피해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상처의 원인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그 안에서 서서히 물들어간 우리 모두의 잘못일 것이다.

특히 기혼여성 안에서 작동하는 불합리한 가부장제는 우리 사회 안에서 더 공고히 자리매김하려 하지만, 곪아가고 있다. 며느리의 자리,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사회 구성원의 자리 등을 더 열심히 지키도록 강요하고 억압하는 사회.

뿌리가 썩어가는 나무가 땅에 묻혀 있은들 살아나기엔 역부족이다. 그 나무 옆에 새로운 묘목을 심어 이제라도 잘 가꾸어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라 생각한다.

이제는 부당한 시댁의 처우에 당황하지 않고 마음 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내 존재가 상처 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흔들리지 않을 부정의 이유를 찾고 행동하지 않을 자유를 찾으며 내 삶의 지분을 넓혀 나가려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치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