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는 요새 출근은 잘하냐?"라고 물으신다. 곧 쉰을 바라보는 다 자란 중년 아들의 안부 치고는 '요새 학교는 잘 다니냐'라고 손주 안부를물으시듯 한다. 늘 그러시니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난, 아직도 싫다.
그다음이 전화를 하신 본격적인 이유인 건강 관련 이야기이다.
"아비 요새 술 많이 마시냐, 밤늦게 뭐 못 먹게 해라, 여주 달인 물은 잘 챙겨주냐, 먹는 거 조심히 시키고, 운동 좀 하게 해라, TV보니 요새 ○○이 좋다더라, 니가 신경 좀 써라" 등등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라치면 그새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모두 아들 안위에 관한 질문들이다. 나의 안부, 나의 자녀들의 안부(큰 아이 안부는 잘 물으신다. 장손이라)에는 큰 관심이 없으시다. 이런 지시어들을 받잡고 시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나면
'아, 나는 펫을 키우던 중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 챙기고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사람인 '남편'이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왜 시어머니는 중년이 다 된 장성한 아들을 '자기 돌봄' 조차 못하는 저능한 상태로 만들려 하는 걸까?
이런 탓에 시어머니와 전화 통화 후엔 언제나 대화의 내용이 머릿속을 떠다니어 복잡하고 마음은 무거우며 기분은 나쁘다. 시어머니의 언어에는 며느리를 향한 차별과 배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건강염려증'이 심하시다.
글로벌한 시대에 맞게 몸에 좋다는 것들을 TV 건강프로그램에서는 국경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달마다 해마다 바꿔가며 끊임없이 쏟아낸다. 종류도 가지가지, 식품도 가지가지이다. 그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흡수하신 시어머니는 또 그대로 며느리들에게 설파하신다.
이렇듯 시어머니가 건강 프로나 건강정보에 집착하시게 된 동기는 시아버지의 당뇨와 고혈압도 원인이긴 하지만 어머님의 지난한 삶의 역사 속에 끊어낼 수 없는 집착의 동기가 있다.
가장 큰 동기는 두자식을 먼저 앞세운 비운이 있으셨고 그러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각박하고 고된 시집살이는 여전하였으며 이러한 상처 투성이인 어머니의 마음을 얼러달래줄 줄 모르는 공감 부재의 시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마음이 텅 빈 상실감을 남은 자식들에 기대어 '챙김'으로써 상처뿐인 본인의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계신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들을 이해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그분의 삶에 연민도 느낀다.
하지만 유달리 '내 남편'에 대한 건강염려증이심해질 때, 내 가정의 일에 나보다 본인이 더 나서실 때, 내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문제에 내 방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때 나는, '시가'가 힘들고 그분을 멀리하고 싶어 진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크게 겪은 일이 있는 내 남편에 '관해'더 신경 쓰는것 같다는 나름의 동서 판단이 있었지만 그 보다는 나에 대한 '못 미더움'이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생각의 첫 자락엔 내 친모의 부재로 온전한 '챙김'을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로 인한 내 내면에 있을 '돌봄의 부재'로 자신의 '아들과 손주'가 제대로 된 '챙김'을 받지 못할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시가의 기준에서 나는 '좋은 며느리'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과도한 '챙김'의 강요에 '나'는 내려놓은 체 좋은 며느리로 탈바꿈하기 위해 시어머니의 지시어들에 맞춰 고된 수행의 과정을 겪듯 나름의 '시집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 수행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건강정보와 육아정보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수행 또한 그 정보들에 맞춰 끊임없이 바뀌고 지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힘든 심리상태를 남편에게 넌지시 털어놓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란다.
시어머니의 말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내 힘겨움의 토로는 무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며느리에게 강요되는 '과도한 돌봄 노동'의 부당함과 그로 인한 아내로서의 '자발적 챙김'마저 거부하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심리적 압박이 이유인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부터의 탈피를 위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인데 그는 나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앞에 해결보다는수수방관하며 '내편'아닌 '남-편'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그는 남편과 아들 그 두 위치에서 어느 한쪽도 성실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했다.
시아버지가 그러하고 지금의 '남-편'이 그러하듯 집안의 가장인 그들은 생김새나 성격뿐만이 아닌'소통불능'도 대물림해주었다.
마음속으론 곱씹고 머릿속으로 서류를 작성해 본다.
15년째 이어지는 시어머니의 지시어들이 내 삶과 내 가정에 속속들이 파고들고자 할 때 이젠 화를 넘어 분노가 치솟는다.
이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을까 몇 가지 되지 않는 방법들을 거듭거듭 생각해 본다.
첫 번째 남편 찬스는 '남-편'이 되면서 소멸했다.
옛날 옛날에.
두 번째 찬스는 내 주장을 펼쳐보는 것인데 내 옆에서 힘을 실어줄 내편이 없으므로 내 말의 파급력 또한 없다.
패스.
세 번째 찬스, 이것을 찬스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관계를 가장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되시겠다.
그것은...
'이혼'
이런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수없이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머릿속으론 이혼 서류를 작성해 봤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