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서

[서평]'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를 읽고

by 미리내


여자에게는 결혼이 삶의 불합리를 체험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건이다
태어나서부터 생활하던 일상의 관습과 규범이 달라지는 장소인 시집이야말로
혹독한 타자 체험의 장이다. 은유 [올드 걸의 시집] 중


문장들은 나의 결혼생활에 적확하게 부합되는 말이다.

태어나서 사회규범에 맞추어 타인들과 지내 왔다. 그 속에서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직장생활 또한 큰 부대낌 없이 잘 어울리며 30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서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함께 한 세월이 15년이니 짧지도 그렇다고 마냥 긴 세월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시간들이다.

시간을 가늠하기엔 어정쩡한 세월이지만 그 속에서의 삶은 '나'라는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짚어주는 많은 일들과 사건들이 있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결혼 전 까진 무탈했던 나의 감정표현들과 생활습관들이 시집에선 나를 제대로 가르쳐 보내지 못한 며느리로 전락시키는 순간순간들이 이어졌다. 그럴때 마다 남편은 내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일들에 침묵함으로써 배신의 연속이었다. 그로 인해 시집이란 곳은 나에겐 불편하고 불안한 장소였으며 내가 맘 편히 쉴 공간이란 단 한 곳도 없는 '혹독한 타자 체험의 장' 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직장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낸 내 마음은 건강하지 못했다. 순간순간 휘몰아치던 감정들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였고 숨길수 없는 감정에 웃는 날 보다 우는 날이 많았다 .

결혼은 내 삶의 차디찬 '겨울'이었으며 맑은 날 없는 '우기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내 안에 내제되어 있던 가부장제와 마주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러던 올 6월 한 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지면을 보았다.

제목에 이끌려 바로 책을 주문하고 그다음 날 도착하여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결혼생활동안 점점 차오르던 차디찬 감정들과 눈물의 씨앗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나는 내 안에의 가부장제와 마주하게 되었고 원인을 깨달았다.


결혼 후 아이 셋을 출산하며 육아와 가사, 그리고 직장까지 다니며 워킹맘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체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인내심엔 한계를 느끼며 나는 내 안에서 미친 여자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주쳐야 했다. 남편에게 나의 힘든 심신 상태를 이야기하면 '유난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고 그로 인한 부부싸움은 서로를 상처내기에 바빴다.

결혼 후 사는 내내 '나'는 없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의 자리만 있을 뿐.

이렇게 나를 상실한 후 일어난 분노의 감정들이 미처 몰랐던 내 안의 가부장제와 맞물려 삐걱 거리며 작동 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자기 자신'이 사라진 삶은 폭력이라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가격 당한 것이 아닌 사회가 만든 폭력. 우리 사회는 시가 중심의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기혼여성의 위치는 상실을 강요당하고 돌봄이 대물림되는 구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겨울과 우기를 관통했던 내 결혼생활은 '나'라는 존재가 빠진 상실의 시간이었고 '나'라는 존재는 돌봄의 구조에서 희생을 강요 당하였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무엇이 가장 나다운 일이고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것을 '글쓰기'였다. 내 글쓰기 실력은 비록 '교내급'으로 학교 백일장에서 상 타본 것이 전부였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생각하였다. 그리고 브런치에 작가 응모를 하였고 다행히도 기쁘게 작가 신청이 되었다. 이것이 나다운 나를 찾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작한 것은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다행히 '또' 기쁘게도 내 날것의 글들을 편집자님의 수고로운 손길을 통해 빛을 보개 되었고 공적인 글쓰기를 시작 할 수 있게 되었다.


글 쓰기는 '나'를 찾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한번에 읽기 쉬운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훈련되지 않은 초보자의 글쓰기란 읽고 또 읽기를 시작으로 하는 지난한 반복의 시간이다. 그렇게 여러 차례 글을 읽고 지우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로인해 시간 체크를 제대로 못하여 식사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또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안에서 복작 되다 보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어 늦은 밤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있다. 그러 날은 새벽 늦게까지 이어져 다음날 늦잠을 잤다. 이런 나의 부주의로 반복되던 실수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돌봄의 부제. 끼니 챙김의 공백이 가져오는 죄책감이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 그리고 '나'자신을 찾기 위해 4인의 역할을 혼자 고군분투 중이니 필연적인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음에도 가부장제는 기혼여성에게 막강하게 작동하는 마음의 족쇄였다.


바깥에서 할 일이 많아져도 집에서 감당해야 하는 나의 몫은 전혀 줄지 않았다. 남편은 마음으로 늘 나의 꿈을 지지해주었지만, 자신은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하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함께하지는 않았다. (p95)


작가 또한 기혼여성이 수행하는 다중역할 중 가정에서의 가혹한 돌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하루 중 엄마, 아내의 역할인 가정 안 보다 가정 밖의 상담사 역할인 1인분을 수행할 때 오히려 평화롭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랬다. 워킹맘일때 가정 안보다 밖에서 직장여성으로서 시간을 보냈던 1인분의 역할이 여유롭고 숨통이 틔었던 것 같다. 가정에서의 다중역할은 제2의 직장이란 의미가 더 컸던 날들이라 월화수목금금금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아직도 '내 안의 가부장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지도 모른다. 사회의 통념이란 시간과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기에 쉽게 받아들여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시도하였고 충돌로써 타협점을 찾았으며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알아내었다.

그것은 '평등'이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변화를 실천함으로써 우리 둘 모두가 조금 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갔다. (P173)


불평등에서 시작된 불합리함의 갈등을 피하지 않고 관계 계선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작가는 서로의 정체감을 회복하였다고 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 또한 평등이었다.

결혼생활이 불평등했기에 분노하였고 그로인해 다툰날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사이의 싸움은 우리 둘의 관계보다는 이 관계사이에 끼어 추를 흔들어 대는 다른이유들이 많았다. 시댁의 문제가 그러했고 아이들 양육과정에서의 교육이 그러했으며 가사부분에도 의견차이는 있었다. 그 흔들리는 추는 항상 내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졌기에 나는 불평등함에 힘들어 했고 항변했던 것이다. 결혼은 '불평등의 장'이기에 현재의 삶도 평등하진 않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나'를 찾는 길을 알았고 그 길에서 나에게 좀 더 집중하며 천천히 걸어가 보려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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