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져 버린 관습에서 사고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사고하는 것만이 길인 것 같다.
우리사회 각계각층에서 성 관련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사건들 속에서 지자체장들의 성폭력, 성추행 사건들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사건 그리고 박원순 사건이 그러하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충격'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던 사회적 위치와 진보세력으로 불리던 그들의 겉과 속의 이중성을 목도하였기에 충격이었고 공과 과의 거리 또한 너무 멀기에 충격이었다.
그럼 이 충격적인 사건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자신들의 공인된 조직안에서 어떻게 이런 추악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할수 있었을까?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 등의 사건의 시발점은 '위력'이다.
평행이 아닌 수직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힘.
이 위력의 또다른 힘은 '목소리'이다.
이 목소리의 크기가 힘으로 작용하여 사건의 사회적 파장력을 키운다.
그 목소리의 파장뒤에 숨어 남성은 어느 순간'불쌍한 가해자'가 되고 여성은 목소리의 위축을 불러옴으로써 '악한 피해자'가 되어 있는 모순적 관계가 성립된다.
이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알려면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남성중심사회의 '가부장적 사고'에 집중해 보아야 한다.
여성이라면 나이가 많든 적든 늙었든 젊었든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위험하니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며 '여동생은 오빠'를 또는'누나는 남동생'을 챙겨야 하는 돌봄의 대상이 되었던 기억들. 무엇을 때문에 조신해야 하고 무엇으로부터 위험하며 여자 형제는 왜 돌봄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먼 옛날부터 자연스레 내려온 관습으로만 여긴 것이다.
여기서 우린 모순이 발생함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발생되는 문제의 촉발을
여성의 부주의함이나 잘못으로 작동되게끔 하는 사회의 구조 시스템의 모순, 그 것이다.
남성은 조신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의 힘을 강인한 '남성다움'으로 표현한다.
남성은 늦은 밤 돌아다녀도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는다.
남성은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여성의 안위를 위해 돌보아야 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여성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자가 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 자신으로 이어진 여성의 삶은 그래서 질곡의 삶이라 일컫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순들이 우리의 일상에도 비일비재하다.
글을 쓰며 생각할수록 그러한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에 의한 의식 흐름이 물 흐르듯 흐른다.
누군가 말했다.
'페미니즘은 파이를 나누는 것이 아닌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남성들은 '페미니즘'이란 단어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리는 듯 사고의 경직성을 보인다.
필자의 남편도 그러하다.
이 반응은 그동안 사회 속의 주체자로 살아온 이들의 방에 새로운 주체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소극적이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응은 여성에게서도 나타난다. 페미니즘을 거부하거나 젠더갈등을 가볍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매거진은 급진적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젠더갈등을 적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