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많은 그녀와 그는 서로 실랑이 중이다. 수십억 자산가가 돈 몇 푼 때문에 쩔쩔매다니...
"언니, 좀 기다려, 기다리라고. 준다잖아"
어린 그녀가 재촉하는 3살 많은 그녀에게 면박을 주며 자산가를 옹호해준다.
"오빠, 언니 돈은 좀 있다 주고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어떤 거?"
"이거.. 나 이거 갖고 싶단 말이야!!"
어린 그녀가 갖고 싶어 하는 건 빌딩이었다.
"이거, 알았어, 얼마짜리야?"
"오빠 최고!!"
수십억 자산가인 그와 어린 그녀가 사이좋은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3살 많은 그녀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다.
"야, 나 안 해, 안 한다고 내 돈 빨리 주고, 그만 할 거야. 빨리 내놔 , 내 도~오~온"
3살 많은 그녀는 너무 억울한지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를 박차고 돌아 앉는다.
그리고 수십억 자산가인 그는 돌아앉은 그녀에게 미처 주지 못한 돈을 던지듯 주며 말한다.
"자, 됐지. 치사하긴, 야 누가 그 돈 떼먹냐?"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린 그녀는 오빠라 부르는 수십억 자산가인 그에게 다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달라 조른다.
그와 그녀들은 서로 합이 맞지 않아 자리에서 해체되고 만다.
그 광경을 조용히 목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수십억 자산가인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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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부루마블 그만하고 다빈치 하기로 했어." 큭큭
코로나 2차 대유행으로 집콕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의 보드게임 하는 장면을 스토리로 써보았다.
코로나가 바꾼 우리 집 풍경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대화를 하며 게임을 하다 한 사람이 게임을 파투 냄으로써 항상 게임이 중간에 종결된다. 끝맺음이 없는 게임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어정쩡하게 끝남으로 아이들은 서로 싸우던 것도 잊고 새로운 게임에 집중한다.
단순하고 집중력 좋기란 쉽지 않은 조합인데 이 어려운 걸 매번 해낸다. 기특한 녀석들~
집회 발 코러나 2차 대유행을 예고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하였다.
방학이 끝나고 대면 수업 중이던 우리 아이들은 다시 온라인과 대면 수업을 병행한 학사일정이 결정되었고 가정에서 다시금 학업과 일상을 겸하게 되었다.
혼란이 가라앉을 틈이 없이 다시 혼란이 일어났다. 어쩜 우린 흙탕물의 맑은 부분만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래 가래 앉은 부유물은 간과한 채 안심하는 사이 그 부유물이 일으킨 파장에 현실은 금세 혼탁해져 버렸으니 말이다.
코로나 1차 대유행이던 그때 집콕하던 이들 사이에 '달고나 커피' 만들기가 유행이었다.
내 주변에서도 달고나 커피 만들기를 시도한 이들이 있었다. 수백 수천번을 손으로 휘젓으며 팔 저림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완성된 달고나 커피는 '달다'였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완성된 결과물은 인고의 시간이 있기에 쓴맛이 나더라도 달다. 또 다른 이들은 그 시도를 '할일없이 보내는 쓸데없는 시간'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나도 그때는 그 표현에 한 표를 던진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끝날 코로나라 생각했기에 집콕하는 그 시간을 좀 더 알찬 일상들로 보내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장기전에 돌입한 일상의 멈춤은 언제 끝날지 모를 두려움에 집안이 형틀 없는 감옥생활 같다. 여름휴가는 고사하고 집 근처 가까운 영화관이나 도서관등 다중이용시설들도 언제 갔다 왔는지 모느겠다. 시간이 멈춘 사이, 집과 가까운 슈퍼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왔다 갔다 했다. 사회구성원으로써 책임감을 갖고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무의미해지자 무력감이 밀려든다.
목이 타는 한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그래서 달달한 아이스커피가 생각날 때 달고나 커피도 덩달아 떠오른다.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무한 반복했던 노동과 시간의 가치를 그때는 쓸데없는 하찮은 일이라 여긴 나를 반성한다. 때론 지식보다, 일상의 무력감을 이겨내는 소소한 행동이 팬데믹 시대를 사는 시민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듯하다. '함께, 같이'가 의미하는 연대 힘은 강력하다. 그것은 '당신은 지금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인임으로.
어른들 못지않게 아이들 사이에서도 장기간 이어지는 집콕 생활은 힘든 나날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3명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 보드게임은 최상의 놀이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인원으로 서로 각자 게임의 룰만 잘 지킨다면 큰 대립 없이 즐겁고 슬기롭게 게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3명 이상이 모이면 꼭 편 나누기가 있기 마련이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똑같다.
우리 집 안에선 큰아이가 막내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항상 둘째만 아웃사이더가 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둘째 탓에 게임이 종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 둘째는 항상 게임의 룰이 자기에게 비 합리적이고 불평등하게 적용된다고 이야기하며 큰소리치기 때문이다. 이번 게임도 큰아이가 건물을 사며 돈을 줘야 하는데 주지 않고 미적거려 생긴 불화였다. 그렇게 종결된 게임은 뒤로 미뤄지고 새로운 보드게임으로 갈아타며 우리 아이들은 부루마블부터 다빈치, 다이아몬드 게임, 할리갈리, 루미큐브, 쿼리도등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란 게임은 모두 섭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집회발 코로나2차로 집콕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은 함께할수 있는 최상의 놀이 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하기 전 큰아이는 친구들과 외출 약속을 잡았다. 그때도 안전문자가 수시로 울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밖은 안전하진 않았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외출은 최대한 자제해야 함을 설명하며 약속을 취소할 것을 종용했다.
아이는 밖을 돌아다니지 않고 최대한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것임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밀폐된 장소들이 더 위험한 것이라 이야기해주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잠시 멈출 것을 다시한번 권했다.
아이는 투덜거리며 불만을 표했지만 미성년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보호자로서 최선을 선택한 것이라 이야기해주었다.
나 또한 가까운 지인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매달 한 번씩 만났던 모임이었지만 올해 초 코로나 팬데믹이 한참이던 그때 우리는 좀 잠잠해지고 일상이 평온을 찾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자는 의견들로 합을 보았다. 그렇게 한 달 한 달 그리고 두 달 석 달 미루다 보니 못 본 지가 한참이다. 그 사이 간간이 서로에게 전해준 소식들엔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던 지인들도 있었다.
코로나19와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그 격리된 사이 한 울타리 안에서조차 가족 간 격리는 단절 그 이상의 죄책감이 생긴다고 한다. 나로 인해 가족들에게 전염이 될까 걱정되어 한 시도 마음 편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최근 다시 모임 약속을 잡았지만 또다시 확산된 코로나로 모임을 연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진자가 나오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올 해가 가기 전에 다 같이 모여 일상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기약 없는 나날에 모든 시민들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