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평 공간에 꾸린 'K-뷰티 놀이터'
2024년 7월, 성수역의 부역명이 핫한 이슈로 떠올랐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서울 교통공사에서 강남, 성수, 삼각지 등의 역명 병기 입찰이 열리면서 핫플레이스의 중심지인 성수역은 과연 어떤 기업이 차지할 것인가 관심이 쏠렸었죠.
약 한 달 후 성수역은 10억 원을 써낸 CJ올리브영에 낙찰됐다는 소식을 접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굉장히 의아했었어요. 올리브영은 H&B 업계 탑이자, 어느 도심에나 있어서일까요? '성수역 올리브영'이 특별한 것도, 올리브영 본사가 성수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반면에 성수동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업이니 '무신사역'이 되겠다는 의견도 많았죠.) 이런 반응을 의식했는지 결국 아주 약간의 논란 끝에 올리브영이 병기권을 반납해 버리긴 했지만요.
그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올리브영'을 가기 위해 성수에 가는 날도 올 거라는 것을. 사실 부역명 입찰 발표 당시 이미 성수에 대규모 매장 오픈 소식이 전해졌었는데, 아직 실체를 본 적이 없으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맞겠어요.
오픈 전에는 지하철 역 이름으로, 오픈 후에는 1400평이라는 압도적인 규모로 뜨거웠던 공간, 올리브영N성수. 저는 오픈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방문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즐길거리는 적당히 풍성했고요. '그냥 큰 올리브영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분이라면 깜짝 놀랄 만큼 꽤나 촘촘하게 공간 구성을 한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1층 | N.PLAYGROUND: 헬스&뷰티 트렌드 재해석한 전시 체험, 카페와 굿즈샵
2층 | BEAUTY&CULTURE: 새로운 영감을 주는 컬러와 럭셔리 뷰티 큐레이팅, MZ컬처 트렌드
3층 | SKIN&WELLNESS: 매일의 스킨케어를 좀 더 깊이 있게 채우는 법부터 헤어, 바디 W케어까지
4층 | N.CONNECT: 문화와 미식을 넘나드는 기분 좋은 경험과 뷰티&헬스의 다양한 네트워크
5층 | N.BEYOND: 헬스&뷰티를 그려낼 올리브영의 넥스트를 담은 공간
사실 저는 뷰티 제품에 관심도가 높은 편은 아니에요. 자주 쓰는 필수품만 주기적으로 사고, 새로운 카테고리나 제품을 발굴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문했는데 꽤나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됐고, 결국 계획에 없었던 제품 구매까지 하고 나왔습니다. 과연 이 공간의 어떤 요인들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a. 끊임없이 펼쳐지는 참여형 구성
올리브영N성수는 '뷰티&헬스 놀이터'를 자처해요. 단순히 제품만 늘어놓고 판매하는 공간이 되지 않겠다는 포부입니다. 실제로 기존에 가장 규모가 컸던 명동 올리브영보다 공간 크기는 넓으면서 상품 수는 줄였다고 해요. 확실히 체험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죠. 이는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느낄 수 있어요. 1층을 PLAYGROUND로 구분한 만큼, 처음부터 제품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참여형 전시 존으로 꾸렸거든요.
매거진처럼 매월 주제가 바뀌는 형식으로 제가 방문했을 때는 <THE SUMMER MISSION>이라는 주제로 산리오 캐릭터들과 함께한 체험존이 있었어요. 사실 미션은 낱말 퍼즐, 미로 찾기, 컬러링처럼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요, 미션을 완수하면 기프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집중해서 미션을 풀더라고요. 오프라인에서 주는 경험은 때론 복잡할 때보다 가벼운 게 더 잘 먹히기도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누구나' 참여하면서 작은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2층부터는 본격적으로 카테고리별 매장이 있는데, 여기서도 참여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해요. 다만 1층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2,3층의 상품 체험존은 뷰티 솔루션 프로그램, 피부 컨설팅 레슨 등 제품 구매를 넘어 H&B관련 다층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거든요. 당장 해보긴 어려웠지만 전문적인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고 하니 '다음에 여기 와서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간에서 제공하는 경험은 사용자의 심리적 허들에 따라 레벨을 구분할 수 있는데요, 올리브영N성수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층에서는 비교적 진입점이 낮으면서도 흥미롭게 소비할 수 있는 이벤트형 참여존을 2-3층은 관여도가 높은 솔루션/클래스형 참여존을 만들어서요.
b. 섬세한 큐레이팅
같은 콘텐츠도 어떤 맥락으로, 어떻게 보여주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이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올리브영N성수는 상품 큐레이션에도 꽤 공을 많이 들인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카테고리별로 나눴지만, '뻔하지 않게' 보여주려 애쓴 것이 느껴졌거든요.
본격적으로 상품을 구경할 수 있는 2층에 들어서면 화려한 럭셔리 편집숍과 향수존이 바로 눈에 들어오는데, 이 분야에 관심도가 높지 않은 사람임에도 정말 '구경하고 싶게' 만들었더라고요. 예를 들어 Perfume Libray에는 시향지와 향수 브랜드를 마치 책장처럼 한눈에 보기 좋게 큐레이션 해두었어요. 3층의 INGREDIENT BAR는 제품에 들어가는 성분별로 큐레이션을 해서 마치 실험실 같은 구성이었고요.
카테고리별로 단순히 뭉쳐서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제품들을 빛나게, 같은 제품도 색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 결과물이겠죠. 실제로 제품군별로 배치나 높낮이가 다 달라서 400여 종의 집기를 새로 제작했다고 하네요. 결국 제가 예정에 없던 제품들을 써보다가 구매하게 된 것도 이런 큐레이팅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c. '성수'라는 지역성
마지막으로 이 공간이 위치한 '성수'의 지역성을 잘 살렸다는 것도 주요한 특징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매장 이름에 성수를 붙인 것도, 부역명 입찰에 참여했던 것만 봐도 이 지역의 가능성을 꽤 크게 보고 투자를 한 듯하죠.
성수동은 여전히 팝업의 성지로서 가장 빠른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지역이자,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도 점점 늘고 있는 곳입니다. 연무장길에 늘 줄을 세우는 편집숍 포인트오브뷰의 존을 따로 만든 것도, 오픈 기념 굿즈를 오롤리데이(성수동에 사무실과 쇼룸이 있음)와 만든 것도 물론 성수동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겠죠. 영문 안내나 KPOP 존은 외국인 타깃을 고려한 것 같고요.
근데 저는 이것 말고도 눈에 띄었던 점이 바로 '쉴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었어요. 1층의 카페뿐만 아니라 층별로 쉬어갈 수 있는 좌석이 참 많았는데, '성수동 돌아다니다가 좀 쉬어가고 싶을 때 여기 오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수동 자체가 이미 볼거리가 넘치는 동네지만, 올리브영N성수는 그 안에 또 다른 놀이터 같았달까요? 무려 노는 것도 쉬는 것도 모두 가능한.
4층과 5층은 VIP 멤버나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킹&팀플레이 공간이라 살펴보지 못했는데요, 뷰티에 관심이 없는 사람임에도 이미 충분히 오래 머물렀기에 '시간 보내기에 참 좋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올리브영의 이번 시도는 단순히 매장 확장을 위한 것도, 판매보다 체험을 강조하는 브랜딩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그들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고, 이를 위한 발판엔 올리브영N성수가 있을 거예요.
혹시 롭스, 랄라블라... 등 수많은 드럭스토어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코로나와 함께 대부분의 드럭스토어가 위기를 맞는 과정에서 CJ 올리브영은 오늘드림 서비스, PB 제품 강화 등을 통해 시장 내 우위를 유지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 탑을 먹은 지 오래이니 다음 먹거리는 글로벌에 있겠죠. 이미 회사 비전도 '글로벌 뷰티&헬스를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해두었으니까요. (비전 페이지에 한국인 모델과 외국인 모델을 함께 쓴 것도 눈에 띄네요.)
사실 올리브영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한 건 몇 년 되었어요. 글로벌몰 론칭부터, 주요 관광 지역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오픈하면서 해외 고객들에게 K-뷰티를 전파하고자 했죠. 한국을 찾는 젊은 관광개들에겐 올리브영이 필수코스이자 기념품을 사가는 곳으로 기억되고 있죠.
최근에는 올리브영N성수와 함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조금 더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보아요. 올해 진행한 로고 변경도 '영문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했다고 해요.
이런 시기에 성수동에 대형 체험형 공간을 낸 것은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타깃이 되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오는 지역에 확실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는 것. 실제로도 공간에 머무를 때 외국인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당장은 투자만큼 매출이 늘지는 않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인식 하나는 확실히 박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올리브영의 글로벌 도약의 꿈을
섬세한 기획으로 풀어낸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