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렇게 많은 섬김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봤더니
반대로 하나님은 상상치도 못했던 축복의 삶으로 이끌어 주신다.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Maranatha)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서로에게 건넸던 인사말이자 기도문인 마라나타!
바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위한 축언이다.
누구나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된다.
사실 그날이 온다!라고 외치는 종말은 결국 우리의 죽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의 멘토링은 오늘의 주제에 맞게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지혜였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우리의 열매 맺는 삶에 있어서 '썩은 사과'가 되지 말자고 당부하셨다.
이는 즉, 아무런 사명 혹은 비전 없이 그냥 사는 삶을 비유하셨다.
베드로전서 4:2, 요한 3서의 가이오의 예를 드시며 우리의 삶의 결산은 분명히 있으며, 쭉정이는 버리고 열매가 없이는 예외 없이 뽑히기에 빌립보 1장의 바울의 당부처럼 주의 교회에 유용하고 쓰임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꼭 해야 할 사명이라고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삶은 시간을 역산하며 사신 삶이다.
하나님께서 일을 예수님께 맡기셨고 그 누구보다 순종하여 구원을 하고 완성하시기까지 결산 의식을 가지고 청지기 의식으로 삶을 사셨다.
이에 예수님은 이 세상의 시간의 중심에 계신다.
죽음 이후 우리의 시간은 모두가 동일하게 한 자리에 있게 된다, 바로 예수님, 하나님 곁이다.
지미카터의 대통령 이후의 행보가 복되다.
황선주 박사님의 큰 비전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일이 지속되게 한다.
물리적인 예배. 구체적인 결단.
이러한 영적 습관이 사명을 품게 하고 비전을 크게 한다.
소망과 비전을 품고 쓰임 받기 위해 기쁘게 고민하며 지내는 삶에는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가신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계: 22:20)
예수님은 지금도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삶의 마지막날이 끝나면 예수님께 우리는 돌아가게 된다.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셨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혼인잔치의 피날레.
그렇게 예수님은 깜짝 우리를 위해 오신다.
언제 어느 때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
이 깨어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살게 된다.
마나라타!
항상 예수님이 저의 곁에 계심을 의식해서 깨어있는 삶을 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