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생존일지 8.
감정 피라미드의 밑바닥엔 내가 있다.
아이의 밤샘 기침과
준비할 것 많은 등원준비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아침.
여느때처럼 전력질주로 사무실에 안착해
아이스커피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상사 J가 슬그머니 뒤로 다가온다.
J
퇴직연금 이전 어떻게 됐어?
그거 오늘까지 해야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나
서류 못 받은게 있어서요.
안내 못한 제 불찰입니다.
요청했습니다.
J
겨우 신규 하나를 그렇게 끌면
일을 어떻게 하냐?
나.
네... 죄송합니다.
빨리 하겠습니다.
나도 나름 사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이 기분 나쁠 정돈 아니었는데
왠지 마음이 엇나간다는 느낌이 든건
며칠 전 왜 일을 그런식으로 하냐는 핀잔과 무안을
고객 바로 앞에서 때려박힌 기억 때문일 거다.
서로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
누가 더 손해인건지 모르겠으나
인격적으로 지내긴 어려운 관계라면
굳이 필요 이상 다가갈 필요는 없겠지.
쿨한 척 생각하면서도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다운 받고
유튜브에서 관련영상을 검색하며
나는 영 찌질한 인간인 것을
겉만 강성이고 속은 무른 찐따인 것을
절감하고 마는 퇴근길...
누군가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야기가
오픈채팅방 여기저기에 또록또록 올라왔다.
마음이 혼란 투성이이니
무슨 일인지 큰 관심은 두지 않았다가
아이를 재우고 고요한 상태가 되니
불쑥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유튜브를 켜 보니
ㅁㅎㅈ 님이 ㅎㅇㅂ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는 상황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그 기자회견을
꺽꺽 울며 보았다.
K직장인의 신분제에 대한 연민이나
단물 빨리는 상황의 감정적 공감이기도 했지만
짓밟히면 아 식빵 나 존나아파!!!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과 말발이야말로
눈물이 나오게 부러웠던 부분이다.
질책이 꼬리를 무는 J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단 한 번의 말대답을 했던 순간,
J는 콧방귀를 끼며
자기 지금 너무 놀랐다고
니가 나한테 할말은 아니지 않냐고
더 크게 역정을 냈었다.
후. 이런 상사와도
잘 지내는게 사회생활이라면
그냥 사회 부적응자가 되고 싶지만
결국 마음이 불편해서
내 안의 상처는 덮고 만다.
꾸준히 글을 쓰라는
브런치의 알람이 있었지만
그간 이렇게 에너지를 쓰느라
글을 쓸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무려 1달 간이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