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생존일지 7.

하루 9시간, 외딴 섬에서 살아남기

by 행복한지니


계약은 9시간이었지만

대개는 10시간 이상을

직장 안에서 보내고 있다.


웃음소리도,

음악소리도 없어


프린터와 전화기 벨 소리가

소음처럼 크게 울려퍼지는 공간.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땐

세상 명랑하고 친절한 말투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엔

무표정하고 시든 모습의

K직장인으로 돌아오고 만다.



옆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옆사람이 말을 거는 일도

거의 없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가볍게 얘기하기에도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아 그래, 좀 솔직해 보면


그녀들의 주말이

딱히 궁금하지 않기에

먼저 운을 떼지 않는 것이다.


공통분모 없는 나의 말을

그들이 공감할 수 없기에

주제를 꺼내기 망설여지는 것이다.


공허한 이야기나

침묵이나


10시간이나 되는 근무시간을

숨막히게 하는 건 마찬가지이니


선택은 침묵이 될 수 밖에.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늦게 퇴근해야 하는 것이

세상 무거운 고민인 나와


사람을 쓰거나 남편에게 맡기고

일을 더 하고 가라는 그녀들.


오로지 삶에 일, 일뿐인 그녀들은

조직에서의 성공을 중시하지만


조직에서 굳이 성공하고 싶지 않은

나는 결이 다른 인간상이다.


서로 공감할 부분이 없는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알고부턴


괜히 흠결이 잡힐 것 같아

입을 다물게 되었다.



휴, 좀 솔직해지자니까.


사실 다르기만 했다면

침묵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중심으로 수군대다

무슨 일인지를 물으면


아, 아냐 아무것도.

라며 돌아서는 상황들을 겪으며


굳이 말을 건 결과로

민망해져야 하는 게 싫었다.



그래도

10시간이라는 긴 근무시간 동안

말 없이 지내야 하는 시간들이


퍽 외롭긴 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모두와 나눌 순 없다는 게

매우 놀랍지만 현실이기에


오늘 무슨 웃긴 일이 있었다거나

고객이 어떤 말을 해서 속상했다거나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옆 직원들과 나눴던 대화를

머릿속에서만 정리해 본다.



지금은

외딴 섬에 있다.


여기에 외치지 않으면

어디 대나무숲도 없으니


좀 외로워도

괜찮다고 외쳐 본다.


살아 보니

이런 기간이

오래 가진 않는다.


은행의 좋은 점이 뭐니.


바로,

인사이동이 주기적으로

멀리께 난다는 점이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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