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별 Apr 08. 2024

은행원 생존일지 7.

 하루 9시간, 외딴 섬에서 살아남기


계약은 9시간이었지만

대개는 10시간 이상을

직장 안에서 보내고 있다.


웃음소리도,

음악소리도 없어


프린터와 전화기 벨 소리가

소음처럼 크게 울려퍼지는 공간.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땐

세상 명랑하고 친절한 말투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엔

무표정하고 시든 모습의

K직장인으로 돌아오고 만다.



옆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옆사람이 말을 거는 일도

거의 없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가볍게 얘기하기에도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아 그래, 좀 솔직해 보면


그녀들의 주말이

딱히 궁금하지 않기에

먼저 운을 떼지 않는 것이다.


공통분모 없는 나의 말을

그들이 공감할 수 없기에

주제를 꺼내기 망설여지는 것이다.


공허한 이야기나

침묵이나


10시간이나 되는 근무시간을

숨막히게 하는 건 마찬가지이니


선택은 침묵이 될 수 밖에.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늦게 퇴근해야 하는 것이

세상 무거운 고민인 나와


사람을 쓰거나 남편에게 맡기고

일을 더 하고 가라는 그녀들.


오로지 삶에 일, 일뿐인 그녀들은

조직에서의 성공을 중시하지만


조직에서 굳이 성공하고 싶지 않은

나는 결이 다른 인간상이다.


서로 공감할 부분이 없는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알고부턴


괜히 흠결이 잡힐 것 같아

입을 다물게 되었다.



, 좀 솔직해지자니까.


사실 다르기만 했다면

침묵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중심으로 수군대다

무슨 일인지를 물으면


아, 아냐 아무것도.

라며 돌아서는 상황들을 겪으며


굳이 말을 건 결과로

민망해져야 하는 게 싫었다.



그래도

10시간이라는 긴 근무시간 동안

말 없이 지내야 하는 시간들이


퍽 외롭긴 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모두와 나눌 순 없다는 게

매우 놀랍지만 현실이기에


오늘 무슨 웃긴 일이 있었다거나

고객이 어떤 말을 해서 속상했다거나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옆 직원들과 나눴던 대화를

머릿속에서만 정리해 본다.



지금은

외딴 섬에 있다.


여기에 외치지 않으면

어디 대나무숲도 없으니


좀 외로워도

괜찮다고 외쳐 본다.


살아 보니

이런 기간이

오래 가진 않는다.


은행의 좋은 점이 뭐니.


바로,

인사이동이 주기적으로 

멀리께 난다는 점이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은행원 생존일지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