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은 아직 차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색이 다르다. 2월의 색은 약간의 기대감이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따스한 봄이 올 거라는 희망.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설렘. 며칠간 얕은 눈이 반복됐다. 새벽 5시 오늘의 이 길을 처음 걷는 사람이 나이길 바라며 운동화를 고쳐 신었다. 얕은 눈에 얕은 발자국이 흐리멍덩하게 찍혔다. 발자국이 뭐 이리 못났어. 1월의 눈과는 확실히 달랐다. 걷는 이에겐 제법 안심이 되는 눈이다. 이 정도 눈은 맨 땅과 별 다를 것 없어 온전한 걸음으로 운동량을 채울 수 있다. 1월의 눈처럼 운동화가 움푹 들어갈 땐 난감하다. 걷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걷는 다 해도 온전한 에너지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얕은 눈이 내려도 겨울 볕에 힘없이 녹고 마는 2월의 여정이 시작됐다. 여전히 내 마음은 2020년에 머물고 있었다. 어째 2020년이 아직 덜 끝난 느낌이다. 마무리가 덜 된 채로 12월 32일, 33일, 34일, 35일 무한정 늘어나는 것 같다. 12월 뒷장에 계속해서 날짜가 추가되고 있었다. 당신네 달력도 그래요? 내 달력은 이상해. 그런 찜찜한 기분에, 잔혹한 추위에, 1월 한 달간 그저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봄볕을 기다리며 내 마지막 인내심을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춥다.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은 기약 없는 물음표로 남았다. ‘언제쯤 우리 볼 수 있을까요?’ 움직임엔 자유로움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조심스러운, 서로의 경계를 늦출 수 없는 2주간의 약속이 지속됐다. 또다시 새로운 2주, 그리고 또 다시 내뱉은 2주. 그렇게 지내다보면 어느새 3월이겠지. 시간 참 잘 간다. 아니, 말로만 잘 가는 거지 사실 하루하루가 팍팍하다. 동백이는 피려는데 바람 끝은 아직 차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려나. 나 어디로 가야되니 지도를 펼쳐보고 다시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