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지
오늘 1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그림일 텐데, 정작 내 마음속에는 괴로움과 답답함만이 가득하다.
견딜 수 없는 숨 막힘에 글을 쓰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새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겁지가 않다.
정형화된 삶을 사는 것이 미덕처럼 느껴지는 대화에서 마치 이방인이 된 듯 설 자리를 잃는 기분만 느낀 채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구들의 언어가 '정상가족'을 기반하고 있음을 느낄 때, '이 나이에는 이런 모습이어야지'하는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전제하고 있음을 느낄 때 숨이 막혀온다.
나는 인간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의 모습에 자주 '왜'라는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언어, 내 행동, 내 모습이 그저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적 다수의 행동을 필터 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나의 모든 선택은 그 기저에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옳고 그름, 필요와 불필요가 있어야 하니까.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뿌리에서 태어났기에 '개인'으로 먼저 존재해야 한다.
다수의 선택을 고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라는 정체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결혼이라는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선택할 계획이 없다.
나의 기질과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인 것이 더 적합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롭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을 원한다. 그렇기에 선택과 책임이 온전히 나 하나에 달린 삶이 더 적합하다.
반대로 결혼이라는 옵션을 '선택'하려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결혼을 하려 하는지, 내게 결혼이라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가 첫 번째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일 것이고, 나 자신을 넘어 상대의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 꿈 등을 면밀히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해야 할 사람이고, 상호의 선택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니까.
'왜 결혼을 선택했냐'라는 질문에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니까', '부모님이 원하시니까', '나이가 되었으니까', '연애를 하고 있으니까', '결혼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같은 답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런 말들은 본인이 한 선택의 근본적인 부분을 마주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상하게 느껴졌던 말은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였다.
이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왜?'라고 물었더니 '그럼 결혼을 안 하냐'라고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에게 있어 '결혼'이란, '정상'적인 '모두'가 당연지사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 : 왜 결혼이 하고 싶어?
A : 그럼 결혼을 안 하냐
나 : (.....?)
한국인은 심리적 기반에 특유의 '관계주의'를 깔고 있다고 한다. 그 관계주의 심리 때문에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환상을 갖기 쉽다고.
그리고 우리는 그 환상 아래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과 유사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아 왔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이다.
오래 자리해 온 심리이니만큼 빠르게 사라지기 어려운 것을 알지만, 앞으로 또 그만큼 오래 이런 분위기를 견뎌야 할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져 온다.
그저 한 가지 다짐해 보는 것은, 이런 분위기에 자신감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다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거기에 동조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그 의미 없는 손가락들 앞에서 약해지지 말자고.
눈 감는 날 그래도 이 한 인생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느끼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힘이 닿는 최대한으로 '나'를 지키며 살아왔음에 자부심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