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상반기를 이제야 보내며

고약했던 23년 상반기여 안녕.

by 김하비



아직은 꽤나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한 여름의 축축한 습기는 대부분 사라졌다. 풍경은 물기 어린 두 계절을 보내며 건조한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차근히 하고 있다.

다가올 두 계절까지 알뜰히 겪고 나면, 또 새해가 밝아올 것이다.



여름이 끝나간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작년에는 두 번 모두 빠짐없이 썼던 반기 회고글을 올해는 아직 쓰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22년은 지나고 보니 꽤나 성공적이었는데, 당시에도 어렴풋이 이 한 해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나 보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회고를 남긴 한 해였던 걸 보면.



올해 상반기는 안 좋은 일 투성이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길 마음이 0에 수렴했던 걸지도. 사실만 나열해도 어쩐지 찡찡대는 글이 될 것 같아 기록을 남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면 작년이 너무 괜찮았다 보니 힘듦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 건가? 20대부터 힘든 일이 산더미였는데 한 해 좀 괜찮았다고 역치가 낮아지는 건 어쩐지 억울한데.




올해 상반기 몇 년이나 다녔던 회사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었고(내가 대상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당연히 상처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열정을 바쳤던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에 날아갔으며, 강제 보직변경을 통보받았고,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회사를 뛰쳐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7월이기는 하지만 그 뒤에 잠시 다녔던 회사는 거의 10년에 이르는 내 경력을 통틀어 가장 도라이 같은 회사였다. 3주 만에 3년 치 내상을 입고 도망쳐 나왔다.



올해 참 지독하다. 경기가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듯 안 좋았던 시기, 일반 직장인이 겪는 삶이 얼마나 좋을 수 있겠냐마는, 이렇게 경기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그래도 다행인 건 상황 대비 내 멘탈이 나름 건재하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데 이만한 외부충격이 이번 한 번이랴(제발 한 번이길), 인생 그래프의 고저를 담담히 넘겨내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해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상반기 회사 밖의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직장인이라는 본캐가 지진난 땅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회사 밖의 시간에 쏟을만한 여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산을 참 많이 갔고, 책을 많이 읽었고, 사주 공부를 시작해 보았고, 블로그 운영을 시작했다. 일주일 간 태국 여행도 다녀왔다.


직장인이라는 본캐를 뒤집을만한 부캐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습관을 챙겼다고는 말할 수 있는 상반기였다. (나 자신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말 것. 잘한 일은 잘했다고 칭찬해 주어야지.)


상반기 동안 (지금 읽고 있는 책을 포함해) 25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4권 정도는 읽은 셈이다. 1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으니 객관적으로 그렇게 많은 숫자까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전년보다 확실히 독서량을 늘렸다.

그리고 작년까지는 읽은 책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노션을 통해 읽은 책을 트래킹 하고 있다. 또 6월부터는 독후감도 쓰기 시작했으니 만일 학생이었다면 숙제장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와 별 다섯 개를 받을만하지 않은지.


블로그도 3개월째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위에 말한 독후감도 블로그에 쌓고 있고, 방문한 장소나 여행에 대해서 일주일에 2편 정도 글을 남기고 있다. 작년까지 스스로에 대해 가장 아쉬웠던 점이 '꾸준히'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과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두 가지를 착실하게 개선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견하게 생각한다.


회사 밖의 나는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잘 챙겨냈다.

꼭 회사에서만 성장이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들을 몇 가지 잘 챙겼다면 이 또한 기쁜 일이 분명하다.









1년의 가운데에 쓰는 회고글에는 모름지기 남은 절반의 시간에 대한 기대도 조금 담겨야 인지상정이겠지.

하반기가 벌써 1.5개월 정도 지나가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4.5개월을 위해 방향성을 설정해 본다.

나이를 먹어가며 전보다 확실하게 조금 나아진 것은 희망사항이나 목표를 정할 때 나에게 알맞은 수준으로 계획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되, 간혹 실패할 수도 있는 정도로.



우선 부상으로 그만두었던 요가를 짧은 시간이라도 주 3회 진행하는 것.

해석 부분에서 막혀 '짜증 나!' 하면서 방구석으로 던져버렸던 사주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 가능하면 하루에 30분 정도 매일 꾸준히.

브런치에 주 2회 완성된 글을 올리는 것.

상반기에 만든 좋은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정도가 생각난다.

아, 괜찮은 회사를 찾아서 다시 한번 둥지를 트는 것도!



하반기 회고 글에서 가능하면 "모두 해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얼마 전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았는데,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거냐는 질문에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가 있다'며, '이미 주어져 버린 삶을 불행하게 살지, 아니면 행복하게 살지는 본인의 선택'이라는 답변을 해주셨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니, 태어났으면 그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이번 상반기 조금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이미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찾고, 해낼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며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내야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하반기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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