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움의 기쁨

'원래 그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희열.

by 김하비


여름이 참 싫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하얀 피부가 붉고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도, 고온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도, 더위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도 그저 싫기만 했다. 대학교 1학년, 모든 학내 활동을 참여하던 내가 딱 하나 외면했던 게 '농활'이었던 것도 다 햇볕 때문이었지. '살찌고 까매져서 돌아온다.'는 언니의 비추천사가 날카롭게 내 마음을 명중했었다.




그랬던 내가 작년 즈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더위와 싸우다가 문득 '그래, 여름은 원래 더운 거지'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 날엔 땡볕 아래를 걸으며 '그래, 여름엔 원래 좀 그을려야지'로 생각이 닿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 뒤로 여름이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흐르고 흘러 여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되었다.


이젠 여름의 뜨거움이 좋다.

녹아내릴 듯한 고온에 뼛속까지 노글노글해질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

햇볕 아래서 내 피부가 지글지글 익고, 등줄기를 따라 길게 땀방울이 흘러내릴 때 계절을 온전히 만끽하는 기분에 가슴이 저릿하게 행복으로 가득 찬다.




'여름은 덥다.'라는 자연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존재하는 걸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는데 억지 부리고, 버티고, 싫어하면서 '견딘다'라고 생각했다. 굳이 애쓰며 견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존재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니 힘들기만 하던 것들이 오히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모든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사는 것에 기울어져 있다.

억지로 꾸미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 봄에는 피어나는 꽃망울을, 여름에는 더움의 기쁨을, 가을에는 낙엽의 정취를, 겨울에는 시린 공기를 만끽하며 계절감을 온통 느끼는 삶.

계절을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내 몸과 마음에 꼭 맞는 정도로 살다 보면 이 삶도 좀 나아질까?





하얀 피부와 시원함이 꼭 가져야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고, 버렸고, 그렇게 여름이 좋아졌다.

그럼 삶에 꼭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금 내가 욕심내고 있는 건 뭘까?


버릴 것을 시원하게 버리면 삶도 더 이상 버틴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 텐데.

참 어렵다. 여름의 더위와는 레벨이 다른 이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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