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올까, 아니면...
가슴이 떨려온다.
시계는 오후 4시 3분을 가리킨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빛이 책상 위에 투명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목덜미를 스친다.
평소 그녀가 나에게 오는 시간은 4시 10분 안팎.
오늘도 그녀가 올까?
시계가 째깍째깍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유치원—아니, 어린이집 영양사라고 했던가.—
그녀는 매번 퇴근길에 마치 우연인 듯 내 학원에 들러 넌지시 인사를 건네곤 했다. 아이를 핑계 삼아.
그리고 항상 내 몫이라며 빵이나 간식,
때로는 직접 만들었다는 과일 주스를 내밀었다.
그녀가 올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이 점점 조여온다.
*
그녀와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단지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를 넘어,
그녀는 나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굴었다.
토요일 수업 중에 문자가 도착했을 때도 불안했다.
"선생님, 오늘 학원 언제 끝나세요?"
휴대폰 화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알림이 뜨자마자 그녀란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어질 내용도...
"네, 오늘은... 12시 정도에 끝나요."
잠시 후 예상대로 답장이 왔다.
"아, 그러면 제가 도시락 싸드릴게요."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거절하지 못했다.
이미 이전에도 수차례 거절했지만, 그녀에게는 내 거절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마치 거절이 허락으로 변하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했다.
정오, 그녀가 가져온 도시락.
정성스럽게 담긴 연어 샐러드와 각종 채소가 가득한 매운 샌드위치.
그날 나는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건네며 짓는 그녀의 미소는 거절할 수 없는 강요와도 같았다.
"아이가 말해주더라고요. 선생님이 매운 음식 좋아하신다고."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아마도 아이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그녀에게 전달된 것이리라.
내 사생활의 파편들이 하나하나 그녀에게 흘러들어가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의 도시락은 절반도 먹지 못한 채 버려졌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참 많은 학부모를 만났다.
저녁 9시, 10시에 궁금한 점이 있다며 영상통화를 걸어와 퇴근 후 나를 아파트 복도에 세우던 어머님.
매번 전화를 걸어와서 수업 중이니 문자로 소통해달라고 해도, 굳이 '전화'를 해달라고 고집하던 어머님. 그 지긋지긋한 전화는 아이 자랑으로 시작해 남편 자랑으로 끝나곤 했다. 그런 통화를 끝내고 나면 참으로 진이 빠졌다.
그 뿐인가. "친구가 되고 싶다"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자고 하는 어머님도 있었다. 그때마다 당신은 나의 고객이고, 나는 당신 아이의 글쓰기 선생일 뿐,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일.
그렇게 나만의 경계선을 다시 그어왔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어머님들은 물러나 주셨다.
하지만 이번의 어머님은 다르다.
그녀는 그 어떤 경계선도 인정하지 않는다.
태린이 어머니는 일주일에 2~3번(화요일, 목요일, 가끔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치 내 얼굴에 도장을 찍으러 오는 것처럼.
내가 수업을 안 하고 잠시 쉬고 있으면,
그녀는 망설임 없이 학원 안으로 들어와 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선생님, 태린이가요~"
상담을 가장해서 시작된 대화는 항상 그녀의 개인사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털어놓았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 그리고 그 결핍이 현재의 남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눈앞은 깜깜해졌다.
그건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나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
나에게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첫째, 어머님이 오시면 학원 복도에서 대화하기. 내 영역인 학원 안으로 들이지 않기.
둘째, 만약 학원 안까지 들어오면 자리를 권하지 않고 서서 대화하기. 최대한 짧게.
셋째, 극단적인 경우, 사람 없는 척 불을 끄고 학원 안에 웅크리고 있기.
모두 다 어색하고 무례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디 그녀가 눈치를 채고 방문을 줄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그녀가 학원에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빈도는 줄어들었다.
불을 끄고 학원에 웅크리고 있으면 그녀는 몇 번 노크하고 문 손잡이를 몇 번 잡아당긴 뒤 돌아갔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점차 그녀의 방문은 줄어들었다. 2주쯤 지나자 그녀는 거의 오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이 미묘한 균형이 안정될 때까지는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녀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까.
*
화요일 오후 4시 3분.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조용한 학원에 울린다.
5학년 친구들 수업 시간은 4시 20분.
나는 태린이 어머니의 눈을 피해 4시 17분경에 문을 열기로 했다. 그때까지 불을 끄고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똑똑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등골이 서늘해지고 공포가 밀려온다.
그녀가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또다시 들려오는
똑똑똑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아찔했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이 뛰었다.
'침착하자... 침착하게...'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수업 시간 3분 전인
4시 17분에 문을 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원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 앞에는...
한 아이가 서있었다.
얼굴이 상기된 채로 서 있는 학생,
진영이가 있었다.
"진영아!"
목소리에서 안도감이 묻어났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안에 계셨어요? 불이 꺼져서 전 오늘 수업 없는줄 알았어요!"
안도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태린이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저 수업에 일찍 온 내 학생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서 사소한 일에도 과하게 신경을 기울였다.
"미안해, 진영아. 요즘 날씨도 더운데. 내가 잠깐 쉬면서 학원 문을 잠궈뒀었어. 아까 노크도 했는데 내가 문도 안 열어주고.. 미안해."
그러자 진영이는 아까보다 더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저 노크 안 했는데요?"
#브런치소설 #단편소설 #일상공포 #교사일기 #관계의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