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하던 진리, 그 말의 온도
#1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세상은 그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돌을 던지겠죠.
그런데 그 가족들은 어떨까요?
충격을 받고, 분노도 하겠지만…
결국엔 이해하려고 애쓸 거예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겠죠.
도덕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커피숍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그의 금테 안경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아현 씨, 우리는 가족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아현 씨를 가족처럼 생각할 거예요.
세상이 등을 돌려도, 저는 끝까지 곁에 있을 겁니다.”
다시 곱씹어 봐도 참 '다정한 말'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있었나?
그때 좀 더 빨리 그 사람의 마음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쉬움에 입술을 꽉 깨문다. 혀끝에 쓴맛이 번진다.
그래, 그땐 너무 어렸고, 순진했다.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리고 지금 아무리 자책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절대 그냥 떠나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2
‘깔끔하다.’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둥근 금테 안경을 쓴 남자.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절도 있는 말투로 수업을 이끌었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분 단위로 일정을 통제했다고 하죠. 이웃들은 그가 움직이는 걸 보고 시간을 맞출 정도였어요.”
강의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그의 말에 애절한 눈빛으로 귀를 기울였다. 마치 어미 새가 떨어뜨리는 지혜의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어린 새처럼.
“칸트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개념은 어떻게 다른가요?”
수업이 끝나고 빈 강의실에서 교수는 천천히 노트북을 정리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일순 당황한 듯 보이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은 '칸트'씨.
"음..." 그가 안경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은 아닌데요. 그래도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 무언가를 그리며 움직였다.
“꽃이나 시냇물 같은 풍경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름다움’이에요.
반면 숭고함은 훨씬 더 강렬하죠.
끝없이 펼쳐진 대지, 거대한 폭포수처럼
우리 마음을 압도하고 짓누르는 감정입니다.
마치… 망치가 내려치는 듯한.”
솔직히 뭐가 그렇게 다른지는 모르겠고, '망치'만 기억난다.
"교수님, 저랑 같이 식사하시겠어요?"
순순히 따라 나서는 '칸트'.
그날 우린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처럼.
#3
'칸트'는 7살 아이의 아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와 몇 번의 식사를 한 후였다. 아내는 뮤지컬 연출 일을 하고 있고, '칸트'의 아버지는 사업가로 '칸트'가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그와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하죠,"
그가 말했다.
안정적인 삶을 사는 덕에 '칸트'는 숙소 겸용 사무실을 얻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연구한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철학서부터 신학, 윤리학, 심리학 서적까지.
무렵, 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속에 빠져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매일 반복되는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한 행복은 뭘까요?"
그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후의 햇살이 그의 금테 안경에 반사되어 그의 눈을 가렸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회사 들어가 취직하고 돈 벌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런 삶은 어딘가 텅 비어있어요. 그런 기쁨은 시간이 갈수록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철학과 신앙, 진리의 관조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현 씨가 지금 고민하는 여러 신앙적인 갈등들도 결국 진리를 향해 부단히 움직이는 모습 아닐까요?"
가끔 그는 '예수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욕망을 버리고, 고독을 감수하고, 진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싶다고.
우리는 종종 그의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의 말은 언제나 이상적으로 들렸다.
그가 아주 오래 전 갈릴리에서 태어났다면,
십자가를 진 예수가 되었을지도.
그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순수한 태도가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나는 그를 믿었고, 존경했고, 따랐다.
#4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하지만 도마는 믿지 않았죠.
직접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기 전까지는.
예수님은 도마 앞에 나타나 손바닥을 내밀었고,
도마는 무릎 꿇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게 뭐지?
창밖을 보고 있던 내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칸트'의 손에는 구멍이 없다.
사실 '칸트'의 손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내 알 바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 이 사람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떡 하니 올려 두니 유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멘붕과 혼란이 온다.
지금 여긴 미술관. '칸트'는 철학과와 디자인과가 함께 미술관을 견학하는 행사의 책임자로 와있다. 나 홀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창문 앞 안전바에 손을 올려 두었는데, 난데없이 이 인간이 내 손 위로 자기 손을 얹은 것이다.
뭐지?
너무 놀라 이 인간의 얼굴을 쳐다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곧 평정을 찾은 듯했다.
뻔뻔하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 마치 이런 '일'은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처럼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다.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뭘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아현아,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지금은 두 번째 기회야.
나는 망치를 꺼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망치’ 하나.
그의 손바닥 위로
내 망치가 정확히 내려친다.
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움켜쥔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못해.
나는 그의 손목을 바닥에 눌러 고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망치질.
두 번, 세 번, 네 번...
중앙에 정확히 맞춰서.
얼마나 내리쳐야 손바닥에 구멍이 날까?
당신이 그렇게 되고 싶어 했던 예수님으로 만들어 줄게.
그동안 칸트인 척, 예수님인 척, 진리의 선구자인 척 그렇게 지껄여 대더니—
추악하고 더러운 벌레 같은 자식이었구나.
손등이 깨진다. 뼈와 살이 으깨진다. 이윽고 맑은 물이 박자에 맞춰 튕겨져 나온다.
마침내, 그의 손에는 구멍이 생겼다
아, 내 마음은 숭고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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