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냥 2화 - 불 속에서 드러난 진실(완결)

사냥의 끝, 진실의 시작

by 김현


르네는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다. 봄기운이 감도는 공기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우울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향하던 길, 멀리서 정원사 디콘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도련님! 큰일입니다!”

“디콘, 무슨 일이야? 진정하고 말해.”

허리를 굽히며 헐떡이던 디콘이 간신히 말을 잇는다.

“지금 광장에서...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어요. 하녀 마티가!!”
“뭐? 마티?”


르네는 심장을 죄는 분노를 억누르며 광장으로 달렸다.
이미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밧줄에 묶인 여인에게 야유와 침이 쏟아졌다. 겉옷은 벗겨졌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었다.

‘기다려, 마티. 반드시 구해줄게.’

르네가 인파를 헤치며 다가가던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묶여 있는 이는 마티가 아니었다. 프랑수아즈였다.

“난 마녀가 아니야! 제발 풀어줘!”

프랑수아즈의 절규는 허공을 갈랐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고문관이 무표정하게 바늘을 꺼냈다. 나무 손잡이에 철심이 달린 그것.
프랑수아즈는 바늘을 보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만둬!”

르네의 외침에 광장이 일순 정적에 잠겼다.

“도련님, 물러나 주십시오. 지금은 죄인을 심문하는 중입니다.”

뒤포 사제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근거로 프랑수아즈를 마녀로 지목한 겁니까?”
“증언이 있었습니다. 저 마녀가 리나의 죽음이 사기였다고 말했다더군요.”
“도대체 누가!.”

잠시 후, 떨리는 발걸음으로 한 여인이 앞으로 나왔다. 마티였다.

“도련님... 죄송해요.”

르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왜 네가 프랑수아즈를...”
“울리가... 절 마녀로 몰겠다고 했어요.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사제님도 자기 편이고, 누구를 지목해도 된다고 했어요. 살려달라고 했더니, 대신 누굴 고발하래요... 그 순간 아가씨 얼굴이 떠올랐어요.”

마티는 흐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울리는 그걸로 아가씨 재산 일부를 받겠다고 했고...”
“그만.”

뒤포는 이를 악문 채, 마티를 노려보았다.
그때, 말을 탄 루이가 광장으로 들어섰다.

“모두 멈추시오!”

뒤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넨 어디 있었나?”
“교단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뒤포, 당신을 고발하고 돌아왔습니다. 마녀 판결을 조작하고 고발자와 공모해 재산을 착복한 혐의로요. 울리도 자백했습니다.”

마티가 고개를 들었다.

“사실이에요. 울리는 고백했어요. 프랑수아즈 아가씨는 무고해요!”

뒤포는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루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끌어냈다.
그날, 디뉴 마을의 마녀사냥은 뒤포 사제의 축출로 끝났다.



*



며칠 뒤.
“뒤포는 어떻게 됐습니까?”
“사제 회의에서 파면이 결정됐습니다.”

르네는 손에 들고 있던 고문 바늘을 들어 보였다.

“이 바늘, 원래는 피부에 닿으면 고통을 유발하죠. 그런데 전문 사냥꾼들이 손잡이에 얇은 틀을 덧대 바늘이 피부를 비껴가도록 조작했답니다. 겉으론 찔린 것처럼 보여도 실제론 살을 건드리지 않아요. 그러니 당연히 반응이 없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두고 ‘악마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한다’며 마녀라고 단정했어요. 증거라 믿었던 게, 실은 조작이었던 겁니다.”

루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교회 전체에 경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마녀사냥은 이미 너무 멀리 나아갔어요.”

그때, 마티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도련님! 프랑수아즈 아가씨가... 의식을 되찾으셨어요!”

르네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 위, 창밖을 바라보던 프랑수아즈가 그를 보자 미소 지었다.

“르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다 내 탓이야. 내가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르네는 고개를 떨구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프랑수아즈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맞추고는, 작게 웃었다.
고맙다는 듯, 안심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르네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네가 깨어나서 다행이야.”

프랑수아즈는 다시 웃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웃음이었다.
창밖으로 봄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

그보다 더 따뜻한 공기가 잠시 머물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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