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라는 이름의 불꽃
이 소설은 중세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완결 단편입니다.마녀사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침묵과 조작, 그리고 진실의 이야기.
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완결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촛불이 붉게 깜빡였다.
입김에 닿은 불꽃이 가늘게 떨릴 때마다, 그 너머로 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치맛자락부터 타오른 불길은 순식간에 온몸을 삼켰고, 쇠를 긁는 듯한 비명이 방 안을 찢었다.
불 속에서 뒤틀린 팔다리,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꺼져가는 눈동자.
르네는 그 장면을 떨쳐낼 수 없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정적을 깨고 프랑수아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둠 속에 홀로 앉은 르네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방 안엔 단 하나의 촛불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프랑수아즈… 언제 왔어?”
“노크했는데도 대답이 없더라. 왜 촛불만 켜놓고 혼자 이러고 있어?”
르네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리나 아주머니 때문이지?”
그 이름에 르네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마녀라 불리며 화형당한 여인.
병든 자를 돌보던 약초꾼이자, 르네가 아플 때마다 의지했던 유일한 존재였다
“나도 슬퍼. 정말… 하지만 너도 봤잖아.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어.”
“정말 그랬을까?”
르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프랑수아즈, 아주머니가 악마를 숭배했다는 증거가 있었어? 시작은 콜리 씨의 증언 하나뿐이었잖아. 아무런 물증도 없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프랑수아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네가 내 친구라면… 솔직하게 말해줘. 이게 말이돼?”
르네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주머니의 비명, 연기, 꺼져가는 불빛이 밤마다 그를 덮쳐왔다.
“르네, 너도 봤잖아. 고문관이 바늘을 찔렀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어. 그건 분명 마녀의 징표야.”
“그게 어떻게 증거가 돼? 보이는 게 전부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 돼?”
그 순간, 하녀 마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 아가씨도 계셨군요. 도련님, 오늘은 꼭 저녁 드세요. 점심도 거르셨잖아요.”
“안녕, 마티. 난 르네에게 책을 돌려주러 왔어. 르네, 우린 나중에 이야기하자.”
프랑수아즈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정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달리는 동안, 봄 저녁의 포근한 바람도, 피어나는 꽃도 그녀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르네… 넌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
루이 브라유. 스물여섯의 젊은 부제.
검은 사제복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정돈한 그는, 절제된 신념으로 뭉친 인물이었다.
디뉴 마을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녀사냥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그는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날 밤, 사제실 문을 열려던 그의 앞에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남자의 품에는 천으로 감싼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비켜요, 신부님.”
“그 손에 든 건 뭡니까? 정체를 밝히시오.”
그 순간, 안쪽에서 뒤포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이, 그 자는 보내주게.”
남자는 루이의 팔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저 사람, 고발자 울리 아닙니까?”
“들어오게.”
사제실 안은 조용했다.
책상 위엔 금화와 보석이 흩어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마녀의 유산이지. 이제 교회가 가져야 할 몫이다. 꽤 많이 모아뒀더군.”
뒤포는 아무렇지 않게 금화를 주머니에 담았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루이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죄를 심판받은 자의 재산이다. 교회는 그 죄로 더럽혀진 돈을 정화해야 하지. 우리가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해.”
“그 남자에겐… 뭘 주셨습니까?”
“고발자에게 일부를 나눴을 뿐이다. 진실을 밝힌 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준 것뿐이지.”
“…정의입니까, 거래입니까?”
“정의가 실현되려면 누군가 입을 열어야 한다. 신은 그들을 통해 죄를 드러내시는 거다. 우리는 그 도구일 뿐이야.”
잠시 침묵.
뒤포는 금화를 천천히 쓸어 담으며 말을 이었다.
“루이. 세상은 타락하고 있어.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을 두려워하지 않아. 누군가는 죄를 씻어내야 한다.
전쟁, 간음, 탐욕… 마지막 심판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 심판을 집행하는 자들이다.”
루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데, 우리가 틀렸다면요?”
뒤포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그녀가 마녀가 아니었다면요.
죄가 아닌 걸 죄라 했고, 고문으로 입을 열게 하고,
그 재산까지 교회의 이름으로 가져간 게…
그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면
그때도 우리는 신의 뜻을 따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루이. 신의 심판은 불완전한 인간의 손을 빌려 이뤄진다.
가끔은 죄 없는 자도 희생된다. 하지만 그것이 질서를 지킨다면, 하늘은 그 피를 기억하지 않아.
마녀였든 아니었든, 그녀는 두려움의 불씨였다.
우리는 그 불을 끈 것이다.”
루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마치 온몸이 묶인 듯 굳어 있었다.
그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일요일, 교회는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얀 제의를 입은 뒤포 사제가 연단에 올랐다.
“사탄은 거짓과 악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이니
그를 경계하고, 그의 속임수에 눈감지 말아야 합니다.”
장중한 목소리, 고개를 숙이는 회중.
그 틈에 누군가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한 여인.
손등엔 땀이 맺혀 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녀는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보였다.
하녀, 마티였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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