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 꿈을 짓밟으세요"

진심에 대하여

by 김현


수업 시간, 연필 끝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민호와 서율.
마치 용과 호랑이처럼, 말은 없지만 눈빛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같은 5학년, 다른 장르의 글을 쓰지만
서로를 의식하는 건 숨길 수 없다.

그런데 주영이의 한마디가 교실의 공기를 바꿔 놓았다.

"난, 민호 글이 더 기대돼. 민호가 공부도 잘하잖아."

민호의 얼굴엔 쑥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서율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평소라면 웃으며 넘겼을 말도,
오늘은 달랐다.

자신이 가장 진심을 다하는 '글쓰기'에 대한 비교였으니까.

수업 내내 서율은 무표정했다.
그 무거운 침묵을 모두가 느꼈다.

열심히 써내려간 문장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숙제가 아니다.

그건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다.


*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주영이를 조용히 불렀다.

"네가 서율이의 그림이나 운동 실력으로 얘기했다면 서율이는 분명 웃고 넘겼을 거야. 그런데 글쓰기는 건들면 안되지.

너도 알잖아, 서율이가 글쓰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리고 그런 칭찬은 민호도 난감하게 만드는거야."


그날 이후 나는 ‘진심을 건드리는 말’에 대해 곱씹게 됐다.

그런데 며칠 뒤, 나는 그 실수를 직접 저질렀다.


*


수업 시간에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제 꿈은 의사예요."


그때 나는 너무 현실적으로 반응했다.

"아현아, 너 수학·과학 안 좋아하잖아.
너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의학 드라마 작가는 어때?"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아현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훌쩍이기 시작했을 때야,
내가 끔찍한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뭔데, 이 아이의 꿈을 평가했을까.
그건 오로지 아이의 선택이고, 아이만의 몫인데.

수업이 끝나고 아현의 눈물은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아무리 달래도 그칠 줄 몰랐다.

"선생님, 왜 제 꿈을 짓밟으세요."

아현이의 말이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


며칠 후, 아현이는 100점이 적힌 시험지를 들고 왔다.
그때 나는 잠시 책을 정리하느라 폰 확인이 늦었는데,

아현은 더운 복도에서 15분이나 기다리며
학원 문을 열어달라는 메시지를 13번이나 보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의기양양하게 시험지를 건네는 아현.
그 순간 깨달았다.
아현이는 나에게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려고 온 것이라는 걸.

"아현아, 선생님이 미안했어.
넌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진심을 건드리고 있는 걸까.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누군가는 밤새 뒤척이고,
누군가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려간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는 건, 또 얼마나 늦은 걸까.

진심이란 그런 것이다.
가장 소중하기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아름답기에 가장 쉽게 상처받는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진심을 지켜주는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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