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해 스테디하게 나오는 이야기로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다. 성선설이 맞냐, 성악설이 맞냐. 이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성악설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악하게 사는 건 쉽지만 선하게 사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들도 천박한 거 다 알아” 라는 말에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마치 인간의 가면 뒤에 숨겨진 놀라운 이면을 발견한 양 이야기하지만, 그냥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인간은 원래 천박하다. 인간을 천박하게 만드는 욕심, 우리는 ‘본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주 1차원적이고, 굳이 고등 생물이 아니더라도 갖추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며 생존과 연관된 요소(요소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일단 요소라고 하겠음). 인간은 힘들고 약할 때 본성이 나온다고 한다.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타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본인의 기분이 태도가 존나 되는 뭐 그런 상태가 된다. 어떻게 보면 뇌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아닐까 싶다. 그냥 굳이 생각이란 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아마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면 편할 것이다.
물론 본능 자체를 천박하다고 보긴 어렵다. 본능은 생물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살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욕구이다. 하지만 본능만을 내세우는 사람을 천박하다고 하는 건 인간은 본능만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이고, 본능만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마다 본능과 욕구가 존재할 것인데, 이 본능과 욕구가 겹치게 되면 분명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도 치킨이 먹고 싶고 쟤도 치킨이 먹고 싶다고 치자. 서로 본능 대로만 행동한다면 둘 다 치킨을 먹으려고 할 것인데, 나의 욕구를 채우려면 쟤는 치킨을 먹으면 안 된다. 내 치킨을 뺏어 가려는 쟤를 막기 위해 싸움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치킨 하나 가지고 싸우는 걸 보면 어떤가? 추잡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치킨을 예시로 들었지만, 이 본능에 의한 욕구는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그럼 '추잡한' 싸움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단순하게 싸움 잘 하는 사람, 즉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될 것이다.
본능대로만 행동하면 강자가 살아남기 좋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가 멀쩡하게 굴러가는 이유는 바로 화자가 말한 ‘올바른 척’ 때문이다. “올바른 척 그만해”. 여기서 말하는 이 ‘올바른 척’은 다양한 언어로 존재한다. ‘상식’이라는 단어로 존재해서 인간 사이에 기본적인 울타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도덕’이라고 불리면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또는 ‘문화’라고도 해서 각 나라 사람들과의 차이를 존중해 주기도 하고, ‘사회생활’ 이라고 하면서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도 한다. 인간은 고등생물이다. 본인의 천박함과 추악함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천박함을 드러내지 않고, 본인의 추악함 때문에 타인이 피해보지 않도록 배려하며, 각자가 사회에 맞춰 질서를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고등 생물인 것이고, 이 세상은 사람들의 ‘올바른 척’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성악설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선보다 악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의 추악함을 드러내지 않고 선함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선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선을 유지하면서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은 것 아닌가. ‘난 원래 이렇다.’라는 말을 방패 삼아 본인의 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야말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있는 그대로를 다 드러내는 게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는 거라곤 생각을 못하나 보다. 그래서 난 선한 사람이 좋고, 선한 사람이 존경스러우며, 나 또한 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매번 잘 안 되지만 글러먹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노력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위트 있는 척 하며 긴 글을 작성했지만, 사실 이런 류의 글을 작성한 필자의 단순함을 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말을 아껴야 멋있는 거 아는데, 조금만 더 말을 보태 보려고 한다. “니들도 천박한 거 다 알아 올바른 척 그만해” 라고 말한 화자는 아마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생각을 거치지 않고 행동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본인과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생각을 거치고’ ‘남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본인만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게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화자는 생각을 거치고 행동하는 것 대신 남들을 본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택한 것 같다. '너희들도 원래 그런 거 아니까 너희들도 생각하지 말고 본능대로 행동해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저 말이 아니꼽다. 본인이 편하게 살자고, 또는 본인이 그 정도의 '올바른 척'을 못할 것 같으니까 상대방을 본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물귀신 같은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래, 뭐. 천박한 걸 숨기고 올바른 척을 하는 게 위선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길. 우리뿐만 아니라 본인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타인의 ‘올바른 척’ 때문이라는 걸.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척’ 하기를 그만두는 순간, 정말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뒀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저 “니들도 천박한 거 다 알아 올바른 척 그만해” 라는 말에는 “위선도 선이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