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

by 김문

어렸을 때 으레 친구들과 하는 장난이 있었다. 기존에 아름다운 가사를 가진 동요를 우스꽝스럽게 개사해서 부르곤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생일축하노래를 ‘왜 태어났니’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어렸을 땐 친구를 놀리기 위해서 불렀던 노래인데, 오늘은 이 언어의 의미가 조금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왜 태어났니’, 조금 다듬어진 언어로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마광수 작가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못내 억울하고,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세상에 내보내준 은혜를 고마워하라고 들입다 강조해대는 효 사상이 얄밉다.

그러게. 세상에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나? 나도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만약 내가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났다면 신에게 여러 가지 옵션을 조건으로 내걸며 태어났을 것이다. ‘평생 놀고 먹을 정도의 자산이 있는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죽을 때까지 어디 하나 망가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시면 제가 세상에 태어날게요.’ 라고 하면서,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을 거라고 응석을 부렸을 것이다. 신에게 감히? 건방지다고? 하지만 난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걸? 그러니까, 내가, 왜, 굳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따라 오지도 않았을 근심과 고난 및 걱정들을 떠안고 살아야 하냐 이 말이다. 내가 살아있다면 아주 다양하게 심각하겠지만, 내가 소멸된다면 같이 소멸되며 때로는 내가 아닌 산 자의 몫이 될 그런 근심 걱정 말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하는 걱정, 살아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분명 나는 원치 않았는데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 사이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낸다. ‘인생’이라고 명명되는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 나는 이게 참 신기하다. 그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일 뿐인데, 그 사이에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읽었던 김상욱 교수님의 ‘떨림과 울림’이 생각났다. 이 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원자론의 입장으로 서술해 놓은 구간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조그마한 원자들이 모여서 사람을 이루고, 사람이 죽으면 흩어져 다시 원자가 된다. 정말 단순한 원리이다. 하지만 원자들이 모인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원자 그룹 덩어리가(무려 화학과를 나왔지만 다른 분야로 길을 틀어버린 까닭에 과학 지식을 전부 망각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과학 까막눈의 표현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언어와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소통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걱정하고, 일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순히 원자들이 뭉쳤을 뿐인데, 원자들이 뭉쳐서 아주 넓고 다양한 우주를 형성하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원자 그룹 덩어리가 흩어져 다시 원자가 되는 날, 다른 원자 그룹 덩어리들에게 ‘기억’으로 남게 된다. 과학적으로 봤을 땐 원자 그룹 덩어리가 다시 원자가 되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애초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원자들이 모이는 데에 과학적인 이유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 존재의 이유’에 걸맞는 목적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원자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인간 하나를 탄생 시켜야 하니 모이자!’ 라고 하면서 모이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어리둥절한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눈을 떠 보니 지구이고, 눈을 떠 보니 대한민국이고, 눈을 떠 보니 우리 부모님이 나를 낳고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미 없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공란이다. 굳이 찾자면, ‘그냥’이 되겠다. 뭐,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기 때문’이 되겠다.


태어난 건 고통이다. 아이를 낳는 엄마도 고통이고, 태어난 나도 고통이다. 이 와중에 인생을 사는 것도 고통이다. 어떻게 해야 잘 살지, 어떻게 해야 행복을 찾을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해야 불행과 고통 등을 피할지 고민하면서 ‘산다’. 그러게. 우리는 고민이라는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산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거창하고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과거는 후회만 남고, 미래는 불안을 초래하지만, 현재라는 그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될 수도 있겠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순간은 인생을 살면서 쌓이게 된다. 그게 또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만든다.


나도 태어난 건 고통이라고 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나 또한 여전히, 태어난 건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을 매일 끌어안고 산다. 또한 여전히, ‘무(無)’ 존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것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삶은 고통이지만, 재미있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우울감이 나를 덮치다가도, 다음 날 먹을 크림빵 하나로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삶을 영위할 것들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한다. 복잡해 보이는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원자 그룹 덩어리로 살면서 원자로서는 경험하지 못할 다양한 재미, 다양한 감정, 다양한 추억을 쌓을 대로 쌓다가 때가 되면 다시 원자로 돌아가겠다. 그럼 다른 원자들과 이런 인생을 겪었노라고 이야기 해야지. 그 때까지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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