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은 Aug 21. 2021

자 이제 옷을 만들어 봅시다

라이프스타일 스포츠웨어 히드코트 런칭기_4

지난번 내용은 요약하면 1억을 모아 3,000만원을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아이템은 스포츠웨어로 정했다. 골프를 치면서 입고 싶었던 옷을 머릿속으로 수개월간 상상했다. 그다음으로는 유튜브를 켜서 수많은 의류 사업 종사자의 영상을 보았다. 시청할수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단순해 보였다. 비전공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이겠구나 싶었다.


처음으로는 스포츠웨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단 공부를 시작했다.

폴리와 나일론, 코튼과 린넨, 레이온과 새틴까지 대강 우리가 들으면 알 수 있는 원단의 성질부터 생전 처음 들어보는 텐셀, 선염원단, 후염원단, 번아웃까지. 

옷감의 대표적인 성질을 이론으로 공부했다. 블로그와 유튜브 그리고 책에서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동대문 종합상가를 방문해봤다.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나는 가로 10cm X 세로 10cm에 담겨있는 스와치로는 어떤 옷이 나올지 도저히 가늠도 안됐다. 처음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가져온 스와치를 아직도 보관 중인데 도대체 무슨 옷을 만들려고 이런 원단 스와치를 얻어왔을까 웃음이 난다.

감을 얼마나 못 잡았는지 다이마루 집에서 왜 이 원단으로는 정장 바지를 못 만드냐고 따진 적도 있다.(물론 만들수는 있다.) 지금은 이런 초짜 같은 실수는 안 하지만 여전히 원단은 공부해야한다. 계속 이 일을 하려면 내가 고른 모든 원단을 테스트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원단시장 직원분들과 사장님들을 붙잡고 이 질문 저 질문을 해가며 정보를 얻어냈다. 같은 원단을 판다면,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던 가게의 원단을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 처음 원단시장 가는 일을 얼마나 대단한 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제목들은 '스와치 얻는 법' '원단시장 투어 팁' 등등... 시장을 돌다 보면 처음 와본 듯한 사람들이 우물쭈물하며 스와치를 얻어 가거나 쭈뼛거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처음 온 사람은 처음 온 티가 난다.' 

패션을 전공해서 대학생 시절부터 원단 시장을 들락날락 한 사람이 아니라면, 비좁은 복도와 난잡한 동대문이 당연히 낯설다. 처음 간 사람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팁은 딱 하나이다. 기죽지 않는 당당함. '나 모른다. 어쩌라고. 원단을 팔려면 좀 알려줘라.' 작은 브랜드 대표들이 원단을 얼마나 많이 사 가겠나. 대기업이나 프로모션, 동대문 시장(두타, 평화시장)에 비하면 우리는 소매업자 수준이다. 그래도 내가 한 벌 두 벌이라도 꼭 팔아서 앞으로 더 사 가겠다는 패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옷을 만들고 싶은데 원단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열에 여섯 정도는 사장님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쫄 필요가 없다.

처음 옷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팁이 하나 더 있다. 

만들고자 하는 옷과 비슷한 옷을 갖고 있거나 레퍼런스를 찾았다면 그 원단의 케어라벨에 적힌 혼용률을 보자. 폴리 92 스판 8이라고 적혀있다면 동대문 시장에서 '폴리에스터'를 주로 취급하는 층과 호수로 가면 된다. 보통 비슷한 원단을 취급하는 집들이 몰려있는데, 가게에 가서 원단을 내밀면서 비슷한 걸 찾아달라고 하면 가게에서 빠르게 말해준다. "없어요." 라든지 "이거에요~"라든지.


이론으로 공부한 원단은 정말 기본적인 성질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나머지는 실전이다. 1층부터 4층까지 동대문을 돌고 돈다. 아까 전에 왔던 그 집을 또 지나친다. 그렇게 새롭고 더 좋은 원단을 찾기 위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찾은 원단 스와치를 가져와서 내가 우선적으로 꼭 체크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1. 원하는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소재인가.

가져온 스와치를 보면서 소재와 색상을 체크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은 전체적으로 광이 없는 스타일인데, 혹시 원단에서 광택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패스한다. 내가 동대문에서 돌아다닐 때에 스와치를 가지고 오는 기준은 내가 선택한 컬렉션 컬러가 포함된 스와치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소재인지이다.


원하는 원단을 찾기 위해 한 달 이상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원하는 원단이 결국 없구나 싶었는데 결국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색과 기능과 재질을 갖고 있는 원단은 대부분 어딘가에 있다. 원단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한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원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소재인가.

우비를 만드는 데 방수 기능이 없는 소재이면 곤란하다. 특히 내가 만드는 옷은 기능성 스포츠웨어이기 때문에 마냥 예쁘고 색이 마음에 든다고 가져올 순 없다. 옷에 원하는 기능이 있다면 원단에서 관련된 기능을 꼼꼼히 체크해가며 보는 것이 좋다. 방한, 방풍, 쿨링, 방수 등을 체크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기능성 테스트를 마친 인증 마크가 있는 회사의 원단이 더 좋다.


3. 물 빠짐 및 늘어짐이 없는가.

스와치를 가져와서 꼭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잡아당겨보고 물에 빨아볼 것. 물 빨래가 가능하다고 케어라벨에 적혀있었는데, 세탁 시 다른 옷을 망쳐버릴 정도로 색소가 빠지는 경험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색이 있는 원단이라면 무조건 빨아봐야 한다. 나는 물 빠짐이 없는 원단을 선택한다. 또 하루 입었는데 옷이 늘어나거나 축 처지면 다신 그 브랜드를 입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늘어짐과 물 빠짐은 꼭 스와치로 먼저 체크해본다.


4. 가격은 적당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좋은 원단은 세상에 많다. 동대문에는 이탈리아나 일본에서 생산된 원단을 파는 매장도 있다. 아니면 원단 수입사와 원단 개발 공장 등을 직접 찾아가서 거래를 틀 수도 있다. 다만 좋은 원단의 문제는 가격이다. 

비싼 원단도 좋지만 내가 생각했던 예산과 생산원가, 매출이익률 등을 항상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가격 포지셔닝과도 자주 비교해보며 선택해야 한다. 


처음 봄 시즌을 시작하면서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가격대가 높은 원단을 욕심내 가져왔었는데, 퀄리티가 높아진 만큼, 마진을 포기했다. 

갑자기 생각난 좋은 팁이 있다. 메인 원단을 바로 주문하기 직전에 "혹시 저희의 예산에서 조금 벗어나서 그런데 원단을 좀 더 저렴하게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을 때 깎아주는 가게들이 몇 있다. 일단 두들겨 보자.


5. 원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하자는 없는가.

어떤 원단이나 하자는 있다. 1~4번의 내용은 바로 체크할 수 있지만 공임을 진행해야지만 보이는 몇 가지 하자가 있다. 그래서 샘플링을 하고 입어보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보통 이 하자들은 공임을 진행하는 공장 사장님들이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처음 옷을 만들어보는 사람들은 원단을 공장 사장님들과 먼저 공유하길 추천한다. 너무 늘어져서 바늘이 움직일 때 원단이 밀릴 수 있다거나, 열을 가하면 과하게 수축한다거나 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옷을 만드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까다롭다. 언제 어디에서 사고가 터질지 몰라 여전히 나는 공장에서 오는 전화가 무섭다. 그리고 보통의 그 사고들은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에게 손실로 돌아가기 일쑤이다. 1년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사고는 다 겪어본 것 같다. (물론 아직 남아있을 듯ㅎㅎ) 그래서 다음번 브런치는 옷을 만드는 과정 중 생산 공임 전에 꼭 체크해야지 손해 안 보는 팁이나 경험담을 공유해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3000만원으로 브랜드 사업 존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