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몽에서 디자이너를 찾았던 날

EP. 02 기준 없이 헤매던 리서치의 끝에서

by 김소이

기준 없이 헤매던 리서치의 끝에서

가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그래서 어떤 가방을 만들 건데?”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었다.



기준 없는 리서치의 늪(후..)

처음엔 리서치를 했다.
평소 하던 디자인 업무처럼 자료를 정리하고, 유형별로 스크린샷을 모아가며 정리했다.
그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온라인에만 의존했었다.
실제로 시장에 나가서 제품을 만져보고, 무게를 들어보고, 안쪽 구조를 살펴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UX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직접 가입해서 써보곤 했다.
회원가입은 어떻게 되어 있나, 인터랙션은 어떤지, 정보 구조는 어떤 흐름인지…

직접 써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게 분명 많았다.


근데 그걸 왜 가방에는 적용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좀 아쉽다.



리서치는 했지만, 방향은 없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분명히 ‘노트북 가방’이었고,
브랜드의 첫 뮤즈는 ‘에밀리’ 같은 여성이었지만 그 외에 기준이 없었다.


리서치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준이 없으면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괜찮아 보이고, 그러다 보면 방향이 계속 바뀐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줄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문제는… 내 주변엔 UX 디자이너는 많았지만, 가방 디자이너는 아무도 없었다.




크몽에서 디자이너를 만나다

그러다 문득, 크몽이 떠올랐다.
나도 예전에 외주를 받아 일을 해본적이 있었고, '가방'도 있을까 싶어 검색해봤다.
그리고 운 좋게 한 브랜드에서 활동 중인 가방 디자이너를 찾았다.


나는 작업을 의뢰할 때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어떤 의도로 만들려고 하는지를 먼저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스토리, 만들고 싶은 제품의 방향성을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그 정리가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엔 정말 '이런 가방이 왜 없지?' 싶었던,
내가 생각한 명확한 페인포인트가 있었다!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 아이디어

의뢰 후 며칠 뒤 디자이너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레퍼런스와 시안을 잡아서 정리해 보내줬다.
내가 못 본 가방들도 많았고, 내가 말로 설명한 감각을 꽤 잘 시각화해주셨다.

틀이 생기니 수정보기도 쉬워졌다.
역시 디자인은 말보다 보여주는 게 훨씬 빠르다는 걸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번 느꼈던것 같다.



신설동 가죽시장과 샘플 키트

그 다음은 소재와 원단.
내가 좋아하는 느낌은 있었고, 디자이너가 직접 시장조사를 해 샘플 키트를 보내줬다.

나도 몇 번 신설동 가죽시장, 부자재 시장에 가봤는데 뭘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랐다.
“이 가죽 색 예쁘네”, “금장이 나을까, 은장이 나을까” 뭐 그 정도....?


가죽 샘플을 몇 개 사오긴 했는데, 아직도 집 구석에 그대로 있다.
왜 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땐 그냥 샘플은 사와야 할 것 같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을 다녔어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많이 보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원단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리고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시장 안에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이런 원단으로 가방 만들 수 있을까요?”
“형태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떤 두께가 좋을까요?”
“오염에 강한 건 뭘 써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직접 물어보면서 발품 팔아가며 알았어야 했다.
그게 진짜 현장이었고,

그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대답들이 있었다.


그땐 그냥 스치듯 지나갔다.

낯설기도 했고, 원가 이런것도 몰라?하는 하는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바보였다 난)


모든 분야가 그렇듯 서비스 디자인을 하면서도

실제 사용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환경에서 쓰는지를

현장에서 관찰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면서 앱을 써야 했던 상황이 있었다.

앱 구조는 깔끔하고 플로우도 정돈돼 있었지만,

막상 차량 안에서 급하게 조작하려고 하니

버튼 위치나 전환 속도, 화면 간 이동 구조가 실제 상황과 너무 안 맞는 걸 느꼈다.

(운전중인데 화면에 나오는 정보도 너무 많았고.....)

이건 실제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걸 이번 원단 선택 과정에서 똑같이 느꼈다.

온라인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던 가죽의 밀도, 두께감, 형태 유지력 같은 건

결국 손으로 만져보고, 현장에서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샘플을 받고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결국 디자이너가 보내준 샘플 키트에서 원단과 색상을 골라 첫 샘플을 진행했다.


샘플을 받아봤을 때,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네...? 이게 내가 디자인한 가방이 맞나…?”
사진으로 정리한 시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디자이너는 원단과 전체적인 밸런스를 확인하는 단계라며
초기 샘플은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해줬지만,
나는 속으로 멈칫했다.


디자인이 다 끝나고 첫 테스트 버전을 받았는데
보기만해도 QA가 엄청 많이 보이는 느낌이었달까.....

뭐 부터 이슈를 등록해야할지 모르는...그런 기분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의 ‘샘플’과
처음 브랜드를 만드는 내 입장에서의 ‘샘플’은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샘플은 차수가 많아질수록 좋아진다는데,

샘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한 번 만드는데 3~40만 원쯤 했던 것 같다.


‘이걸 얼마나 더 만들어야 하는 거지?’ 막연한 두려움도 같이 왔다..

뭐가 뭔지 몰랐던 그때,
그래도 분명한건 나는 뭔가를 하나하나 해내고 있었다.






진짜 무지했던 시절의 기록이네요 :)

다음은 샘플을 받고, 가방을 처음 만져봤던 날의 이야기로 이어가볼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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