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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타 Jul 03. 2023

한 달 13만 원 사교육으로 의대가기

주공아파트에서 한 달 13만 원 사교육비로 의대 입학한 나의 이야기

요즘 미디어를 보면, 의대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런 흐름이, 나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옳고 그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의대에 가려고 사교육비로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하는 것을 보고, 나의 경험이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을 쓴다.


나는 14학번이다. 지금이 23년도이니, 10년 전에 나는 고3이었다.


운이 좋아 재수도 하지 않고, 유급도 하지 않아 지금 의사로서 4년째 살고 있다. 내가 입시를 치른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의 경험에서 독자분들이 쓸만한 건더기 몇 개는 건져가실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가정환경은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 월급은 210만 원이었고, 97년도에 지어진 방 2개 주공아파트에서 사는 3인가족이었다.


중학교 때 나의 사교육비는 한 달 13만 원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나름 지방에서 유명한 학군인 해운대 학군에서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하였다. 전교 1등은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전교 2등만 2번 해봤다. 최종 졸업 성적은 전교 3등.


중학교 3년 동안 치러진 12번의 시험동안 전교 1등을 2번 해본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똑똑한 친구들이 많고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군이었다.








처음 입학 성적은 전교 350명 중에 65등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기초가 필요 없는 암기과목들의 성적은 좋았지만, 영어 수학과 같은 과목의 성적은 낮았다. 초등학교 때 예체능 학원은 다녔지만, 각 잡고 교과과목을 시키는 학원을 다녀본 적은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중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영어 만점을 받은 아이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내 영어성적은 평균을 밑돌았다. 어디서 들 그렇게 공부를 해오는 것인지 신기했다.


어머니는 고졸이시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셨다. 두 분 다 아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은 알고 계셨지만, 정보력은 부족하고 또 공부를 해보지 않으셨으니 방법론도 잘 모르는 분들이셨다.




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이, 시대를 잘 타고났다. 10년 일찍 태어났다면, 나는 공부를 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인터넷 강의의 시대에 살아서, 그것을 누릴 수가 있었다. 강남 대치동의 강의를 저렴한 가격에 지방에서. 당시엔 그냥 있길래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교육의 민주화이자, 혁신이었다.



처음 시작은 영어강의였다. 우연히 접한 엠베스트 강의 무료 수강권을 가지고, 가장 성적이 나빴던 영어를 들었다. 인강을 듣고 친 첫 시험에서는,  미뤄 써서 100점을 못 받았지만, 그다음시험에서는 100점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어설픈 정보력으로 시작한 토스 잉글리시라는 학원은 그만두었다. 인강을 듣고 성적을 올리는 모습을 부모님께 한 번 보여드리자, 그 이후로 부모님은 공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시고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하게 해 주셨다.


인터넷 강의의 효능을 알아버린 나는 전 과목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순수 100% 인강으로만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험을 칠 때마다 성적이 올라간다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사실 없다.


성적을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65등, 그다음은 29등, 14등, 12등.


존재감 없던 아이에서, 어느 순간 나는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선생님도 예뻐해 주시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10년 전에는 중학교 때부터 인강을 듣는 친구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냥 학원을 다녔다. 학군이 좋은 해운대에 있는 학원이긴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달리 대치동에서 가장 잘 가르치는 선생님께 배우고,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해 질문 답변을 받았다. 그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는데, 성적이 안 올라갈 수 없었다.



우리 집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내게 심어주셨다. 본능적으로 내가 살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공부하라고 닦달한다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아무 배경이 없는 내가,  이 사회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게다가 공부는 정직했다. 하는 족족 성적이 오르니, 공부에 한 번 미쳐보자고 결심했던 것 같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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