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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영 Mar 21. 2022

노력, 그거 해봐야 달라지겠어?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보면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저마다의 영상에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퍼블리나 폴인 같은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업무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만의 업무 스킬과 방식들을 가감 없이 가르쳐준다. 나의 생활에서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는 디지털 어느 세상을 보아도 정말 열심히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었다.


열등감이라 하면 열등감이고 부럽다 하면 부러운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멋진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 놓인 일을 해도 보람이 없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의 한 곳에 덩그러니 놓여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도 분명히 뭔가를 하려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걸까?’ 나에게 질문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껴보려 했고 바쁘게 움직이는 타자를 잠시 멈춰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게 있었다.


노력을 잊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노력의 가치를 잊어버렸다.

아니, 노력이 중요한 걸 누가 모르나? 기껏 스스로 답을 낸 게 진부하게 노력이라니?


몇 년 전에 첫 직장으로 꿈꾸던 광고대행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내심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물론 환상만 갖고 있진 않았다. 몇 번의 인턴도 해보면서 각오는 했었지만 생각보다 ‘좋아하는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분명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꼭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어느새 일에 대한 흥미와 주도성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했다. 매번 속앓이를 했다. ‘이걸 열심히 해봐야 뭐가 달라질까?’, ‘다르게 해 봐야 피드백받고 수정하는데 시간만 더 걸리겠지, 하던 대로 하자’하며 점차 속앓이를 관두고 관성적으로 일을 대했다. 노력을 하면 변화가 따라온다는 것에 대해 자조적으로 생각해 갔고 무섭도록 쉽게 몸에 배어 들었다. 노력하려는 생각을 하면 그런 나를 비웃고 퇴근을 서둘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잘 해내고 싶었던 부분들의 능력이 퇴색되었다. 눈앞의 일에 잠시 싫증을 느낀 건가 싶어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 해도 본격적인 추진력이 붙질 않았다. 전방위적으로 나의 모든 능력들이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한 것 같아 막막했다.


이러한 정체기에 봉착하던 중 즐겨보는 네이버 웹툰의 < 복서> 보다, 스크롤을 멈추게 되었다.

복싱 결승 시합을 하는 주인공이 챔피언에게 가하는 결정적   이전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

노력은 단순히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은 깎아내는 것.
먹는 즐거움을 깎아내고,
노는 즐거움을 깎아내고,
관계를 깎아내고,
자신의 삶에서 깎아낼 수 있는 모든 걸 깎아내는 것.
그 한 점으로 응축되고 또 응축된 에너지가
이따금씩 놀랄만한 성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웹툰 <더 복서>


맞다, 너무나 정직하고 우직한 표현이지만 노력은 깎아내는 것이었다. 이 씬에서 제일 흘러내린 내 마음에 한방을 때린 건, 한 번에 깎아 모양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매일 깎아내는 것을 이어가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노력은 한 번에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매일매일 뒤돌아보면 변화가 미미할 수 있다.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속하다가 어느새 뒤돌아보면 체감한다. 서 있는 곳의 풍경이 달라졌음을, 내가 달려가는 속도가 변했음을 느낀다.


이걸 보니 일상에서 깎아내는 노력에 대해 느꼈던 시간들이 상기되었다.


학생 시절 가장 미쳐 있던 것이 있었다. 남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 보는 그런 것이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다. 근데 아주 제대로 발동이 걸렸다. 초등학교 반대항 축구 토너먼트에서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가 된 적이 있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어이없게도 실축을 해버렸다. 이때의 분함을 잊지 못해 축구 관련 서적들을 통독했다. 인사이드, 인프런트, 인스텝 킥마다 어느 부위로 공을 차야 하는지, 임팩트는 어디서 줘야 하는지.

드리블로 공을 어떻게 몰고 가는지, 유명 축구 선수들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축구 하나에 이렇게 자세한 정보가 필요한지 당위성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흡수했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바로 가지 않고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갔다. 경비 아저씨가 나오기 전까지 스탠드에서 패스, 킥, 센터링을 점점 멀어지며 차고

흘러나오는 공을 주워오고 반복했다. 정말 재미있던 것은 이런 루틴을 몇 년 동안 이어가니 내가 뛰는 곳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다. 반 대표에서 학교 대표로, 선수에서 주장으로, 구 대회에서 지역 대회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 전문적인 선수까진 아니었지만 아마추어로서 해볼 수 있는 영역까지 건드려볼 수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매일 이어 갔던 노력은 그렇게 나의 퍼포먼스와 영역을 바꿔주었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넓혀줬다.


요즘 갑작스러운 결심으로 배우기 시작한 노래를 봐도 그렇다. 수업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은 ‘호흡하나였다모든 음에서 발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노래 사이마다 복식호흡할 구간을 정하고 계속해서 상상하는 것을 반복하라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 했던 것들을 말해주었다. 하루 8시간 동안 연습실 벽을 보고 숨을 들이 마쉬는 것을 반복했고 마라톤, 수영 선수들이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울트라브리드를  밥 먹을 때 빼고 계속 끼고 숨을 쉬는 것을 했다고 한다. 작아 보이지만 이런 행동들이 쌓이니 당연히 지금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실 수 있게 되었다. 재능의 영역이라고만 봤던 예술에도 노력으로 깎아내 만들어지는 형상이 분명히 있었다.


사회인이 되어 한 층 성숙해졌다 생각했지만

나의 일터에 입성해 단기간에 다이나믹한 활약과 변화를 기대하고

결과가 안 나오자 나를 비난하고 노력의 힘을 무시했던 단순한 내 태도에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이제 확실히 되새겼다.

노력으로 깎아내면 무엇이든 분명한 변화를 야기한다.

그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그 와중에 우연히 읽었던 노력에 대한 지침을 알려주는 책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 명중하려고 하면 오히려 명중하기 힘들지.
무언가를 바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 펼쳐진다는 거야.
그것을 겨냥하는 순간 빗나가면 어떡하나 걱정부터 들잖아.
걱정이 안 되면 아예 겨냥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지.
목표를 가진다는 건 이미 일정 부분 실패하거나 실패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훈련하기보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도록 훈련해야 발전할 수 있어.
출처: <노력의 기쁨과 슬픔>

최종적으로 내 노력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노력을 이어가려면 목표를 잊어야 한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록을 달성하거나, 메달을 따겠다,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등의 마음을 먹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금방 지치고 과부하가 오기 마련이다. 계속 깎아내는 것을 하려면 목표보다 목적을 떠올려야 한다. ‘왜 이 노력을 해야 하는 건가?’ ‘왜 힘든 깎아내기를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만의 이유를 찾고 시작점으로 삼으면 된다. 스스로 정한 동인을 떠올리며 계속하고 몸에 배기게 해 무의식에서도 떠올리게 하면 노력이 이어지고 변화가 탄생할 것이다.


자, 이제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게 하자.

노력의 목적, 나만의 이유를 설정하자.

그리고 노력하려는 나를 말리지 말자, 비웃지 말자

정답 같은 결론이지만 노력만이 나를 앞으로 가게 하고 빛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노력하고 있다면 나를 가치 있게 대하자. 그리고 지금의 태도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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