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애착 인형을 보고 떠올린, 애착의 시작과 끝
우리 집에는 특이한 곰돌이가 있다. 이 곰돌이의 이름은 ‘단추’이며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올해로 28살이 되었다. 언니와 나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여전히 ‘단추’를 가지고 역할극을 하며 놀 때가 있다. 그 역할극에서 언니는 ‘단추’의 삼촌이고, 나는 ‘단추’의 엄마이다. ‘단추’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족 여행에 꼭 함께한다. 올해 여름휴가로 떠난 괌 가족 여행에도 함께 했다. ‘단추’의 외형은 특이하다. 일반 곰돌이 인형과는 다르게 털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단추’의 털은 없어진 것에 가깝다. 언니가 어렸을 때, 단추를 씻기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다가 사고가 생겨서 ‘단추’의 털이 탔다. 그렇게 ‘단추’는 이 세상에서 털이 없는 유일한 곰돌이 인형이 되었다.
‘단추’는 옛날에 삼촌이 언니에게 선물로 사 준 인형이다. 언니는 ‘단추’와 금세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유치원을 가기 전까지, 내가 유별난 엄마 바라기였기 때문이다. 친척과 아빠 말을 들으면 내가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세상이 떠나 버리기라도 하는 마냥 지독하게 울었다고 한다. 삼촌이 안아도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게 울었다며, 삼촌은 아직도 명절에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그저 나는 영유아기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억울하지만, 나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지독한 애기였다는 것을, 가족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런 내가 울지 않게 하려고 언니보다 나와 긴 시간을 함께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단추’와 놀았고 ‘단추’는 고스란히 언니의 애착 인형이 되었다.
가끔 ‘단추’를 보다가 나의 전 애착 인형인 마론 인형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렸을 적에 나는 곰돌이 인형인 ‘단추’보다 ‘미미’나 ‘바비’와 같은 마론 인형을 좋아했다. 책상 아래가 마론 인형과 마론 인형 물품으로 꽉 찼을 정도로, 나의 꿈이 인형 공장 사장이 되는 것이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집에 와서 마론 인형과 놀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면 빠르게 집으로 달려왔다. 마론 인형과 노는 시간은 무척 행복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때만 해도 나의 절친인 마론 인형을 내 손으로 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애착을 가졌던 것에도 끝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엄마는 집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독서와 역사 논술을 가르쳤다. 그 아이들은 호기심이 넘쳐서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곤 했다. 가뜩이나 나만의 공간을 침범받는 것을 싫어하던 나는 그 애들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유의 밝음으로 엄마의 애정을 받던 한 아이가 나의 프라이버시 공간을 침범했다. 우리 집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서 아이들도 새로운 집으로 수업을 받으러 왔는데, 그 아이는 수업받는 방 말고도 다른 방도 궁금했던 것이다. 곧 들이닥칠 일을 모르고, 나는 방에서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며 나만의 힐링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방문 앞으로 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마론 인형을 내팽개치고 침대 아래로 숨었다. 그 순간 그 아이는 웅크린 나를 보았고, 동시에 내가 수많은 마론 인형을 가지고 논 흔적도 보았다. 잠깐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나는 그 아이가 간 줄 알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이 일 이후로, 나는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 때 방문을 잠그고 놀았다. 그러다 차츰 마론 인형을 가지고 노는 횟수가 줄어서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내 손으로 마론 인형을 몽땅 다 버렸다.
'그 아이가 내 방을 열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마론 인형을 갖고 있을까?’ 사람 일은 모르지만, 아마 마론 인형을 어떠한 계기로라도 처분했을 거 같다. 좋아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집에서 유일한 애착 인형인 ‘단추’도 10년 후에는 우리 집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니가 아직도 한 침대에서 ‘단추’와 함께 자는 모습, 핸드폰을 하더라도 ‘단추’를 껴안고 있는 모습, 최근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단추’를 데리고 가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논 모습을 떠올리면 ‘단추’가 없는 우리 집을 떠올리면 허전하다. 어쩌면 ‘단추’는 10년 후에도 우리 집에 있을 것만 같다. 우리 가족과 쌓은 추억이 깊은 만큼 ‘단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허하다.
그래서 앞을 모르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단추’에게 사랑을 주기로 결심하며, ‘단추’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오늘은 ‘단추’와 카페 투어를 왔다. 디저트가 나온 후, 카페에서 ‘단추’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할 ‘단추’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며, 강아지 키우는 사람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듯 곰돌이를 산책시켰다. 이렇게 ‘단추’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면 10년 후에도 ‘단추’는 우리 집에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