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이를 재우고 영화 한 편을 봤다. <러브, 비하인드>라는 제목으로 수입된 영화였는데, 로맨틱코미디와 드라마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영화였다. 여자와 남자는 어릴때부터 친한 친구이자 연인, 결혼한지는 6년차, 하지만 6개월째 별거중에 이혼을 앞두고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단짝 친구처럼 늘 붙어다닌다.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평화와 행복. 부부로서는 서로를 참아낼 수 없다. 주변 사람들도 감당하기 힘든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던 둘은 남자가 다른 여자와 아기를 갖게 되면서 정말로 끝이 난다. 영화는 사건, 그 다음 사건으로도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여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혼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유추해보건데 여자는 남자의 무능함과 허술함에 지쳤다. 똑똑하고 판단이 빠른 그녀, 옳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고 경제적 안정을 원하는 그녀에게 허술한 예술가 기질의 남편은 재밌고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일생을 의지하고 함께할 동반자는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서로가 아닌 다른 이성을 사랑하지 않는데도 둘은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 의아했다. 저렇게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함께하지 않는걸까. 뒤늦게 사랑이 먼저다! 깨닫고도 이미 엎질러진 상황을 담담히 뚫고 나아가는 그녀의 이혼 성장기가 지금의 내게 수상한 여운을 남겼다.
나와 남편은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다. 스물 둘, 스물 여섯에 처음 만나 일년 이상 서로를 비밀스레 좋아한 끝에 함께가 되었고, 적절한 기간동안 연인으로 지내다 적절한 때에 결혼해 적절한 때 아기를 갖게 되었다. 지금 돌아봐도 적절했다 싶은 우리의 타이밍들. 자기 만족도가 높고 한 순간도 유머를 놓지 않으며 무리한 것에 도전하지 않는, 참 비슷한 우리. 서로가 참 편하고 재밌고 좋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를 서로로 꼽을 만큼 죽이 잘 맞던 우리가 처음 맞닥뜨린 관계의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를 얻은 후였다.
짖누르는 피로와 서로를 향한 원망, 미래에 대한 무력감, 그 와중에도 그칠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 귀여움이 온통 뒤섞여 뿌옇게 흐려진 머릿속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한번씩 그 부유물들을 뚫고 선명해졌다 사라지곤 했다. 정말로 이혼을 원한건 아니었다. 이 혼돈에서 도망가고 싶은 욕망이 이혼이라는 단어로 그저 한번씩 떠올랐다 사라진 것 뿐이다. 그래도 그랬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슬프게 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 재밌고 좋고 행복했던 우리부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서.
우리는 유난스럽게 아이를 예뻐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스럽게 귀여울것도 없는데, 우리는 정신을 못차릴만큼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 주변에 민폐가 될만큼의 모성애와 부성애를 뿜어내고 있다. 한두살짜리 아기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행동을 할 리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리도 없기 때문에 모든 뒤치닥거리는 부모인 우리의 몫. 그렇다 보니 말도 안되는 노동을 해야한다. 말도 안되는 노동을 하다보니 알 수 없는 분노가 쌓인다. 그리고 그 화살이 아이에게 갈 수 없으니 부부 서로에게 향한다. 왜 그렇게밖에 못해. 왜 사사건건 잔소리야. 왜 받아들이지 못해. 나도 힘들어. 나도, 나도 힘들다구.
뜨거운 열정, 넘치는 에너지, 야망이나 욕망같은 말보다는 소소한 재미, 빈둥빈둥, 될대로 돼라 같은 말들이 더 어울리던 우리가 평소에 쓰던 에너지의 몇배가 넘는 노동을 하면서도 아이가 첫 돌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한 해는 제대로 쉼을 얻을 수 없었다. 모든 육아가 힘들겠지만 아이마다 기질이나 행동 차이가 있다. 우리아이는 정말 아들다운 아들인데다 잠귀가 밝아 잠을 재우기가 힘들었다. 낮잠도 힘들었지만 새벽에 너무 자주 깨서 울어 밤수도 오래해야했고(지금도 한다) 재운 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심지어 옆에 누워 같이 잘 수도 없었다)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아이가 좀 덜 예뻤으면 너 알아서 해라- 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둘 다 아이에게 흠뻑 빠져 늘 동동거리며 불편을 없애주고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 애썼다. 그래서 일년간은 몸이 너덜너덜해질만큼 쉼없이 달려와야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갔고 소통하지 못해 산적한 미움과 오해를 풀 여유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시댁과의 불화까지 겹쳐 힘든 연말을 보내고 산본으로 이사했다. 아이는 그 혼돈의 와중에 첫 돌을 맞이했다. 산본에 오자 많은것이 바뀌었다. 우선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주말의 모습이 바뀌었다. 원래는 토, 일 이틀뿐인 주말 중 하루는 밀린 청소와 집안일에 전부 써야 했고, 하루는 예배를 드리러 교회 자모실에 들렀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시댁에 가서 아이를 보여드리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는 고정적인 일정으로 소비했다. 단조로운데 힘겨운 주말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월요일. 마라톤 같았다. 남편은 주말에 자주 쉼을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쉴 시간이 없었다. 눈앞에 할 일이 쏟아져있고 그 와중에 남편에게 쉼을 주려면 안그래도 사채쓰듯 끌어쓰던 내 체력을 더 혹독하게 소모해야 했기에 자비로운 마누라가 돼줄 수 없었다. 자꾸 쉬고싶다는 남편이 철딱서니같이 느껴졌다. "나도 못쉬어, 그러니 우리 쉬는건 미루고 해야할 일부터 하자" 반복되는 내 대답에 남편도 지쳤고 우리 관계는 정말 최악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서로의 작고 소박한 흠도 용납할 여력이 없게 되었다.
산본에 이사옴과 동시에 우리는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 어차피 아기와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건 힘들었다. 자모실에 들어가면 아이를 따라다니기 바빴다. 우리의 관성과 가족들의 염려 때문에 지난 일년간 열심히 주일 성수를 했지만 하루도 예배를 드리지 못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과감히 교회에 발길을 끊고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각자 여유를 낼 수 있는 시간에 팟캐스트로 좋아하는 교회의 설교말씀을 들었고 혼자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정기적으로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갈증을 해결했다. 사실 남편은 예배 보다는 명상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교회에 오고 가는 시간이 빠지고, 시댁에 가던 일정도 없어지고 나니 하루뿐인것 같던 주말이 하루 더 확보됐다.
청소도 많이 바뀌었다. 빛이 들지 않고 구조가 독특한 과천 문원동 주택집에서는 구석구석 손이 갈 곳이 많고, 청소를 하고 나서도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아 늘 찝찝한 기분이었다. 주방과 마루가 따로 떨어져있어 세탁을 하는 것도 주방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밀린 빨래에 청소와 식사준비, 이유식만들기까지 주말에 몰아 하려니 하루 종일이 걸렸다. 이사온 새 집은 주방과 마루가 하나로 붙은 단순한 구조다. 아파트라 집 밖을 정리할 필요도 없고 구조도 단순하고 면적은 더 좁다보니 청소에 드는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주중에 아이를 보면서도 빨래와 식사준비와 소소한 정리정돈을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주말에 몰아서 할 일은 두시간이면 충분했다. 오전 일찍 부지런을 떨면, 그리고 주중에 내가 좀 더 손을 많이 쓰면, 주말 청소는 토요일 오전 11시 내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종일의 휴식을 남편과 내가 오롯이 나눠가질 수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아이의 성장, 발달이었다. 아이가 자기 몸을 훨씬 잘 가누게 되었고, 혼자서 장난감이나 책을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 커지자 혼자 두고 눈으로만 좇으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낮잠을 두시간씩 누워서(안고 재웠다 눕혀야 하지만) 자주면서 나도 그 시간 동안 쉴 수 있게 되었다. 말귀도 곧잘 알아듣고 단어도 조금씩 뱉어내면서 돌보는데 재미도 생겨 아이와 둘이서 하루종일을 보내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남편보다 내가 더 힘들다 느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심리적인 편안함도 생겼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주말이나 휴일이 생기면 육아와 휴식을 한 사람씩 나눠서 갖는다. 서로 어설프게, 독단적인 판단으로 배려하려 하지 않고 공평하고 단호하게 시간을 정하고 엄수하며 룰을 유지하고 있다. 쉬는 시간동안 불필요한 연락하지 않기, 시간 잘 지키기, 육아시간동안 맡은 일 성실하게 해놓기 등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핵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쉬기. 쉬는 시간에 최대한 열심히 효율적으로 쉬기. 그래서 돌아왔을 때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하기. 몆 주 째 이 시스템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결과는 굉장히 성공적이다! 쉼 시스템을 정착하도록 열심히 ㅈㄹ해준 남편에게 감사할 정도로. 지금도 나는 그 시간 덕에 이 글을 쓸 수 있다. 사랑이 육아의 정신이라면, 쉼은 육아의 원칙이다. 휴식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게 어긋나게 된다. 혹시라도 출산을 앞두거나 자녀계획이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출산준비 리스트를 작성하고 베이비페어에 가는 일은 미뤄두고, 어떻게 쉴것인가 전략부터 짜두라고 말하고 싶다. 목숨걸고 휴식을 사수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