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시작하는 방법

글 한 편으로 계절 바꾸기

by 민박집


김봉희 할아버지를 처음 본 날은 2018년의 낙엽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휴학을 한 뒤 떠나는 첫 여행이라 들떠 있었다. 부지런히 싼 짐을 양손 가득 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비수기의 공항의 모습이라곤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패키지를 신청했던 터라 내가 직접 나서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행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가 생겼고 그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이 김봉희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유럽행 패키지여행에서 혼자 온 여행객을 만난다는 건 드문 일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 나 역시 혼자 온 할아버지에 두고 여러 추측을 나열해 갔다. 무엇보다 ‘농협조합원’이라는 걸 광고라도 하는 것처럼 남색의 모자 위로 노랗게 자수 놓인 다섯 글자가 눈에 박혔다. 어지럽게 이어진 실을 따라 이어가다 보면 눈매를 따라 깊게 파인 눈주름이 보였다. 그러면 그의 주름 사이에 끼어 넘어질 것만 같아 조용히 고개를 돌리곤 했다.


패키지여행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흘러갔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이드 분은 우리에게 한 시간 정도의 자유를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 집결지로 모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일행들은 제각기 얼마나 알차고 알맞게 육십 분을 보낼 건지에 대해 고민하다 흩어졌다.

그날은 여행의 첫 날로 기억한다. 체코의 크롬로프성에 올라가 어느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엄마와 나는 담벼락에 몸을 기대기도 하고 동상의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하며 유럽에서의 완연한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제 슬슬 내려가려 멀리 있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다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우리가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며 돌담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미동도 없이,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그는 마치 오래된 지팡이처럼 금방이라도 힘없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친할아버지와 23년을 함께 살아온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조심스레 다가갔다. 사진을 찍어드리겠다는 나의 제안에 할아버지는, 굽었던 몸을 곧게 피며 가을 하늘보다 더 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나를 ‘기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봉희 할아버지는 늘 조심스럽고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나를 부르곤 했다. 사실 말보단 눈으로 나를 부를 때가 더 많았는데 이를테면 내가 막 엄마를 향해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 혹은 멍하니 (사실 내 나름대로의 바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공을 응시할 때 어디선가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설픈 고갯짓을 하며 쫓아가다 보면 그 자리엔 항상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멋쩍게 웃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더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여행의 일정이 반 정도 지나왔을 때였다. 유럽 횡단을 하듯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탄식과 걱정과 의심이 담긴 목소리들이 터져 나와 내 귀에 꽂혔다. 그 속에는 김봉희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말들이 섞여 있었다. 순간 그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을 사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김봉희 할아버지 다음으로 연배가 있는 남성이 핸드폰 속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냐고 물어보자, 처음으로 가을을 본 것 같다는 그의 목소리가 불현듯 불이 들어온 가로등처럼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웃음에서 금방이라도 물이 튀어나와 나를 적실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가을을 지켜주고 싶었다. 한없이 유약한 미소와, 주름진 강의 물결과, 양지 가득한 분위기를.


버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다행히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 뒤편으로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건네는 손을 잡고 할아버지는 나에게 고맙다며 굽어 있는 허리를 더 굽혀 인사했다. 그리곤 초록빛 점퍼 깊숙이 손을 넣고 한참을 뒤적거렸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스락 소리를 내다가 이내 손 위로 꺼내든 건 초록색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대체 이곳에서, 일본도, 중국도, 동남아도 아닌 유럽 한가운데서 세종대왕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지폐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내 생각을 읽었을지도 모를 할아버지는 나에게 ‘고마워서 그래. 용돈 해.’ 라며 낮은 목소리와 함께 눈만 껌뻑였다. 그의 오래된 녹색 점퍼와 퍽 잘 어울리는 상황에서 여기가 한국인가 하는 의문과 동시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회색빛 유럽 도시에서 한국 돈 만 원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근처 시장에 들러 과일을 잔뜩 사 볼까, 이 돈의 출처를 물으면 영어로 말할 수나 있을까. 아무래도 이 돈의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할아버지의 손을 넘겨 잡으며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향한 채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같은 꿈을 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붓을 들어 초록 잎들 위로 색을 칠하듯 나무가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마다 김봉희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느 한낮, 농협조합원 글자가 새겨진 모자와 채도 높은 초록색의 점퍼와 옅은 주황빛의 운동화를 신고 유영하게 길을 걷고 있을 그를 조용히 떠올린다. 그러면 아주 가까이에, 나를 부르는 눈빛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만원 한 장을 쥐어주던 그의 손에서 나오는 온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낙엽 냄새가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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