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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an 04. 2021

음식 데카메론을 찍다

이야기와 먹을거리, 여흥이 가득했던 4박 5일의 집콕기

  동네 마트 냉동식품 코너의 하얀색 밑바닥을 처음으로 보았다.

만두 떡갈비 동그랑땡 등의 냉동식품이 주로 들어있는 곳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싹 쓸어갔다는 뜻이다. 2020년 마지막 날이었다.


  ‘어라? 무슨 일이 있나? 코로나 단계가 또 올라갔나? 4일 동안 먹고 마시고 하려면 장을 봐야 하는데...'

부랴부랴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차를 몰았다. 입구까지는 꽤 거리가 남았는데 마트 직원과 교통이 붙었다.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반나절은 잡아먹겠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휴일 동안 갈 데도 없고 외식도 할 수 없으니 장을 봐서 휴일 동안 먹고 마시려 하는 것이었다.

마트에 있는 육해공군의 먹을거리를 쓸어 담았다. 먹을  있는 데까지 힘닿는 데까지 먹고 마셔 보리라, 작정을 했다.


  우리 가족은 2020년 12월 31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피에솔레'언덕이 아닌 '룰루랄라'집에 들어앉아 칩거했다. <음식 데카메론> 한 편 제대로 찍었다.

페스트를 피해 피에솔레 언덕에 모인 여성 7명과 남성 3명은 코로나를 피해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남성 2인 여성 2인이다. 월요일에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 2주일에 걸쳐 모두 10일 동안 각각 하루에 하나씩 총 100편의 이야기가 <데카메론>에 담겨 있다면 4일 동안의 각기 다른 이야기와 음식으로 재미난 혹은 여흥 거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평행 이론처럼 엇비슷  닮았다.

우럭해물탕이라 쓰고 곤이알탕이라고 읽는다. 남편과 나를 위해 참치알 추가, 아이들을 위해 곤이 엄청 추가!!

  그런데 이 일은 비단 우리 집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닌 듯싶었다.

두부김치-김치찌개-수제비-바베큐-대방어/멸치회-대하구이-닭떡국-된장찌개-고등어조림-문경약돌돼지구이-묵은지찜-해물탕-한우스테이크-돼지국밥-식혜-새우튀김/한치튀김-떡볶이 등등 휴~~

친구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음식 데카메론' 한 편 제대로 찍은 생생한 기록이 한숨과 함께 담겨 있었다.

이거슨, 1월2일 아침의 곰탕갈비만두떡국. 1월1일 먹은 떡국이 맛있어서 한 번 더 해먹었다.

  타임캡슐에 증언을 남기기라도 하듯 4일간의 음식메뉴를 적어 보았다.

시작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사 온 생연어를 잘 썰어 접시에 낸 연어회와 초밥이었다. 어찌나 감동적으로 그 음식을 대했는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생연어회와 연어초밥-통삼겹살구이-감바스-곰탕떡국-스지와 도가니수육-비빔면-갈비곰탕떡만두국-우럭매운탕-닭도리탕-닭죽-라면-순대-소등심구이-김치찌개-
얼려놓았던 닭국물을 꺼내 끓인 닭죽(위). 내멋대로 감바스(아래), 너무 맛있다며 ‘1일1감바스’ 했더랬다.

  헤비한 음식 가운데에서도 가벼운 음식도 잊지 않고 해 먹었는데, 특히 감바스는 세 번이나 해 먹었다. 재료가 미흡해서 대충 흉내만 내자 했던 것인데, 그래도 맛있다며 ‘1일 1 감바스’라는 구호 아래 3일을 디저트로 먹었다.


  그런데, 우리 집 식탁은 아무리 봐도 대결구도의 '남북회담'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한 테이블에 메인 음식이 두 개다. 우리 집 음식 스타일은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이럴진대 남북통일이야 될 것인가?

얼큰 닭볶음탕은 어른 메뉴이고 소고기 등심구이는 아이들 메뉴이다.

스지 도가니 수육과 비빔면은 아이들과 남편용이다. 육쌈냉면을 오마쥬한 것이다. 음식에 관해서만큼은 최대한의 존경과 예의를 지킬 줄 아는 가족들이다. 통삼겹살 구이는 내가 먹는 음식이다.

올 해는 우리 집 식탁에도 통일의 바람이 불어 '1 식탁 1 메인 요리'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컷 양껏 먹었으니 여흥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닌텐도 WII를 꺼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6년 전만 해도 있는 집에서만 있었다는 '전설의 위'이다. 당시 아이들은 조이스틱이나 핸들을 들고 위가 있는 집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했었다.

 "와~게임 엄청 했나 보네, 슈퍼마리오는 단계를 다 깼어... 공부 안 했네, 안 했어!"

아들이 자성의 말들을 쏟아냈다.

소위 '있는 집' 흉내 내다 아들 게임중독 만드는 건 아닌지 고민 좀 했더랬는데, 이렇게 가족이 함께 즐기게 되니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가 있다.

닌텐도 Wii 게임...’마리오 카트’, 고전에 속하는 '슈퍼마리오', 탁구 골프 볼링 사이클 등 스포츠게임 모음팩인 ‘위 스포츠’ 등등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말과 연초를 보낸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시대가 이런 김에 둘러가고 쉬어가자며 아무것도 하지 말자 선언을 하며 남편과 나는 실컷 즐기고 놀고 먹었는데, 아이들은 고3과 중3이 되는 중요한 시기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7시부터 일어나 공부하고 12시, 1시까지 공부를 하였다.

 '너희들의 노력과 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좋은 결과가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지치지 말고 마음 변치 말고 정진하였으면 좋겠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나저나 고등학교 시절,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데카메론>은 <신곡>과 더불어 재밌는 명작으로 친구들에게 읽어보라 설파하고 다녔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자, 2021년 스타트~ 가는 거야~~~ 레고 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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