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Aug 29. 2021

오늘도 북엇국이지!

일요일엔 북엇국이었는데...

   일요일엔~♪ OOO카레 ♬, 아빠는 OOOO 요리사,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과학이다, OOO은 합격이다... 등의 광고 카피는 '무엇=무엇'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킴으로써 앞의 문구만 얘기하면 뒤의 문구가 정답처럼 따라오도록 암암리에 강제한다. 그래서 꼭 일요일엔 카레를 먹어야 할 것 같고 짜파게티는 아빠가 끓여줘야 하는 음식이며 저 브랜드의 침대는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졌겠구나, 저 인강을 들으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장치가 반복적 노출을 통해 공식화되며 힘을 얻게 된 경우다.


  우리 집에도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경우가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북엇국이지!'가 그것이다. 북엇국은 술을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주로 먹는 음식이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열에 아홉은 '전날 술을 많이 마신 게로군'하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전날 술을 마셨다. 전날뿐만 아니라 불금이라 불리는 금요일,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안심되는 토요일이면 묻고 따지지 않고 술을 마신다. 물론 평일에도 술을 마시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해장국이 일요일 아침에만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요일엔 북엇국이지'가 노랫말의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한 때는 "일 년 365일 중에 360일을 술을 마신다"라고 얘기하며 다닌 적이 있다. 그나마 5일을 뺀 것은 '무슨 사정이 있어 못 먹게 된 경우가 5일쯤은 있었겠지'하는 짐작에서다. 아침 식사에도 반주 몇 잔씩 하시던 아버지의 DNA가 우리 가족 중 나에게만 유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DNA가 우성 형질인지 열성 형질 인지도 모르겠지만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도록 태어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고로, 나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순응하며 거친 풍파 속을 술과 함께 착실히 헤쳐 나왔던 것이다.


  그러다 나와 똑같은 DNA를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와 나는 술시(술을 부른다 하여 ‘술시’이며 오후 5시, 퇴근을 앞둔 시각을 말한다)에 드디어 깨어나는 사람들로서, '오늘은 정말 술 못 마시겠다'하다가도 그 시각만 되면 돌변하는 늑대인간처럼 '오늘도 한잔?' 모종의 사인을 주고받으며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술을 마시고 다녔다. 차수는 늘릴 대로 늘려가며 주종도 이리저리 바꾸어가며... 결혼 후에도 그 주법(酒法)은 바뀌지 않고 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 많이 마시지도 못할뿐더러 마시고 나면 힘들어서 해장국이나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음료를 마셔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습관이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과 같은 것이어서 술시가 되면 술상 앞으로가 되고 만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요일엔 북엇국이지!'가 돼 버린 것이다.


준비된 재료에 참기름과 조선간장을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여줘야 국물이 뽀얗게 잘 우러난다. 칼칼함을 담당하는 청양고추는 필수! 마지막으로 새우젓 한 숟가락!


  그나마 해장국으로 북엇국을 선호하는 취향이 같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해장국은 복국을 꼽지만 복은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일이니 차선이 북엇국이다. 사골국물을 베이스로 쓰거나 콩나물, 두부를 넣어 끓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 북엇국의 특징은 뭇국에 버금갈 만큼 무를 많이 넣고 마지막으로 새우젓을 한 숟가락 넣는 데 있다. 잘게 찢은 북어에 소고기를 넣어 함께 볶으면 북어의 시원한 맛과 소고기의 구수한 맛이 조화로이 우러나 깊은 맛이 나지만 소고기 없이 끓인 북엇국이 단출하고 슴슴하고 깔끔하다. 가성비도 좋다. 해장국으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청양고추 하나 넣어 푹 우려 주면 칼칼함은 따라온다. 심심한 국에 활기와 열기가 더해지는 것이다.


  해장국의 면모를 얘기하자면, 해장국이란 술기운으로 거북한 속을 풀기 위해 먹는 국을 말한다. 해장은 사실 숙취로 혼미해진 정신을 풀어준다는 ‘해정(解酊)’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해정을 할 수 있는 국, 해정국이 단순 소리의 변화로 해장국이 된 것이다. (*나무위키백과


  숙취를 풀기 위해 해장국은 많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알코올로 부어있는 위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자극적이지 않아야 하고 지방이 많아서도 안된다. 간의 피로를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충분히 들어있어야 한다. 특히, 명태가 황태가 되면 단백질의 양이 2배 이상 늘어나 전체 성분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고단백 식품이 된다 하니 해장국으로 북엇국, 황탯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칼칼함을 더하기 위해 고추가루를 넣어 먹어도 좋다. 위는 고춧가루와 후추를 넣은 남편의 북엇국


  오늘 아침(일요일), 북엇국은 강원도 양양산 북어로 끓였다. 지난번 강원도 곰배령 여행 때 펜션 사장님이 직접 말린 것을 친정엄마가 사준 것이다. 바닷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으니 해풍을 맞고 잘 말랐을 터였다. 잘 말린 통북어를 '패야 제맛이다' 하며 직접 다듬이 방망이로 패서 찢어주신 것이다.


  북어는 바닷바람으로 바싹 말린 명태를 말하는데 황태와는 다르다. 황태는 민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한 다음 겨울철 덕장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2~3개월 말려진 것을 황태(노랑태)라 한다. 그러니 엄연히 따지면 북어로 만든 북엇국과 황태로 끓인 황탯국은 다른 것이지만 그 뿌리가 명태이니 함께 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맛은 조금 다르다. 북엇국이 담백하다면 황탯국은 진하다. 색깔도 황태가 훨씬 노르스름하다.



  '일요일엔 어김없이 북엇국이지!'를 실천한 오늘.

시원하고 개운하게 북엇국을 마시며 해장을 단단히 하고 '오늘은 술을 먹지 말자, 내일이 월요일임을 잊지 말자, 한 주가 피곤해진다'를 열심히 다짐했건만 시간은 흘러 바야흐로 또 술시가 도래하니,

아까부터 고기를 꺼내고 불판을 점검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술 마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365일 중, 360일에 해당하는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이제 '일요일엔 북엇국'의 신화도 깨질 듯하다. '오늘도 북엇국이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식 데카메론을 찍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