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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l 27. 2020

엄마는 대표 메뉴가 없어!

엄마의 정성과 마음을 이해할 날이 있을 것이다

 엄마는 대표 메뉴가 없어, 아빠는 많은데...


 이런, 아닌 밤중에 홍두깨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냐?

아... 휴... 아들의 이 미친 드립에 힘이 쭉 빠진다.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 아들은 어느날 문득, 선문답을 하듯 외계어 같은 말들을 한 마디씩 툭~ 던지는데 이게 시비를 거는 건지, 장난을 받아달라고 하는 건지, 나의 반응이 어떤가? 궁금해 미끼를 던지는 건지, 나랑 밀당을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뚱딴지 같은 말이라도 걸어주는
중2의 돌멩이를 맞으며
행복하다 해야 되는 건지...


“그 그 그... 그럼 아빠 대표 메뉴는 뭔데?”

유치하기 짝이 없게도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파르르 입을 꽉 깨물며 묻는다.


“돼지고추장 볶음도 있지, 수육도 있지... 응, 맞네! 고기 굽기는 지존이네. 라면도 엄마보다 훨씬 잘 끓이고”

이건 뭐, 집밥계의 달인 나셨다. 백 선생도 아니고 고선생이네.

 

 그래 그럴 수 있다(한 탬포 쉬고).

내가 국물을 좋아하다 보니 라면 물을 좀 많이 잡긴 한다. 나도 아빠가 끓인 라면이 희한하게 맛은 있더라. 그러나 ‘일개 라면일 뿐’이다. 라면은 식사 대용품일 뿐이다. 게다가 한글을 깨우쳐 ‘조리법’만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맛있게 끓일 수 있다.

 수육 삶는 건 엄마가 아빠에게 전수한 거란다. 아빠는 엄마보다 생강과 마늘 된장 월계수 잎을 좀 적게 넣더구나. 그렇지만 물에 빠진 고기는 맛이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리고 아빠의 돼지고추장볶음은 ‘악마의 유혹’이다. 설탕 양에 흔들려서는 안된단 말이다. 설탕 들어가서 맛없는 거 봤니? 나는 가족의 건강을 지킨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입에 단맛은 쉽게 질리게 되어 있다.

 고기는 아빠가 잘 굽는다. 많이 먹고 좋아하니 잘 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깃집 알바가 고기는 더  잘 굽는다.




“야, 달랑 서너 개네. 네가 밥 먹고 자란 세월이 몇 년인데, 나머지는 그럼 엄마 대표 메뉴인 거지?”

“에이, 그건 아니지”

하~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 에이~라고? 아니라고?

야, 이 눔아, 에라이~다, 에라이~ㅅ! 그만하자!

나는 끝내 하얀 손수건을 던지고 말았다. 내 혈압만 더 높아질 뿐이다. 참아야 한다.


아침메뉴가 카프레제라니...집에서 키운 채소라니

 엄마가 얼마나 너 먹는 것 때문에 노심초사 신경 쓰고 살았는지 아느냐?

작고 귀엽고 어여뻤지만 잘 먹지도 않고 왜소하고 작았기에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느냔 말이다.

돌 지난 이후로 낮잠도 자지 않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니 행여 지칠까 먹을 간식을 얼마나 챙겨 다녔는데...

감자 고구마 옥수수 떡 주먹밥 우유 초밥 과자 과일... 주종을 가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다가 열중해서 노는 틈을 타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사투를 벌인 것을 모른단 말이더냐?

친구들과 같이 먹으면 한 술이라도 더 떠먹을까 해서 집으로 온 동네 아이들 불러들여서는 얼마나 음식을 해 먹였는지 아느냐?

누나도 있으나 뭐가 먹고 싶냐건, 무조건 네 의사대로 했음을 모른다 할 것이냐?

고기 많이 먹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 한마디에 끼니마다 다른 고기, 다른 조리법으로 얼마나 고기를 먹였더냐?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고기다.


 할 말 다하려면 3박 4일이 모자랄 판이다.

어머니 할머니가 옛날,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온 얘기를 하시며 항상 첫 시작과 끝을

“니들은 모른다... 그 얘기를 하자면 3박 4일도 모자란다... 책을 써도 몇 권은 쓰겠다... 니들은 좋은 시절에 사는 거다”라고 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야 그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아침일 뿐이다...삼겹살구이라니, 구운 마늘이라니... 손쉽게 먹으라고 친절한 한입쌈밥이라니...


 그러나 아들아, 먼 훗날 이 엄마가 만들어준 밥과 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정성과 수고로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매 순간마다 습관처럼 읊조리게 되는 너를 위한 기도를 알아차릴 때가 올 것이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란다.


그러니 아들아, 다시 한 번 물어보마.

“정녕 엄마의 대표 메뉴가 없다고 말할 것이냐?”

잘 생각해야 한다. 생사여탈권 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사여탈권 정도는 내가 쥐고 있음이니라.




표지사진) 작년 추석 명절에 차린 밥상. 해파리냉채, 소고기볶음, 3색 전과 나물, 생선찜, 나박국물김치, 가지무침, 명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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