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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13. 2020

가지가지 한다

여러가지 좋은 효능, 다양한 조리법으로 열 일하는 가지

 센 불에 밥물이 한번 훅~ 끓어오르면 밥솥을 열어 찜을 할 음식들을 밥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닫는다.

불을 줄이고 한참 동안 뜸을 들인 후, 밥솥을 열면 후와와~ 후와와~ 하얀 김이 앞다퉈 빠져나온다.

잘 지어진 밥 위에는 어김없이 계란찜이 얌전히, 명란 찜이 당당히, 가지가 편안히 놓여 있기 마련이었다.


 전기밥통이 보편화되지 않던 때의 일이다.

연탄불이나 곤로를 사용해 밥을 지을 때이니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 연탄불에 생선을 굽거나 국을 끓이고 곤로에 밥을 하는 식이었으니 다른 반찬을 순차적으로 만들어 내려면 밥 위에 찜을 하여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 최고였다.

어머님들의 기지와 재치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가스레인지가 나오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들의 수고는 조금 덜었으나 2구짜리. 대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그래도 순차적 시간 사용법은 요긴해서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이 테트리스 쌓듯 머릿속에 그려져야 했다.

밥 위의 찜요리는 특히 여름에 진가를 발휘하는데 한꺼번에 두세 가지 조리가 가능하니 주방의 열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밥솥을 열면 얌전히 올라앉은 보시기 속 찜들은 유쾌한 식욕 유발자였다. 계란찜은 단골 메뉴였지만 귀한 명란 찜은 할머니와 아버지 오빠 차지여서 그릇에 눌은 명란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홀로 가지밥’...쌀 위에 툭툭 잘라 밥을 해서 양념장에 쓱쓱 비벼먹으면 입 안에서 사르륵~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특히 여름날의 가지찜이다. 엄마와 할머니 외에 딱히 먹는 식구가 없었기 때문에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가지의 보랏물이 밥에 배어서 식구들은 투덜거렸지만 그로 인해 밥맛은 더 달큼했다.

밥풀 묻은 가지를 그대로 밥 위에 얹어 양념장에 비벼 먹어도 좋았고 따로 조선간장에 조물조물 양념을 한 가지무침도 좋았다.

쪄진 상태의 가지의 보라색은 사실 칙칙하고 깔끔한 느낌은 없다. 게다가 흐물거리는 식감이라니...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시골시골해서 좋았다. 가마솥에 오래 고아진 닭백숙 맛이 났다.

좀 독특한 아이였나 보다.


애써 구운 가지전은 우리집 식탁에서 외면중. 차돌박이와 분홍소시지에 현란한 젓가락질중.

 나의 독특함과는 달리 지극히 정상적이게도 아이들은 가지는 먹지 않는다. 티격태격 이러쿵저러쿵 서로 좋다가 싫다가 하는 생활상을 얘기할 때, 지지고 볶는다 하는데 그야말로 가지를 지지고 볶아도 초지일관이다. 먹•지•않•겠•다.


나만을 위한 가지 반찬...매콤한 가지볶음, 새콤한 가지무침(나만의 레시피: 식초를 넣으면 단맛, 짠맛이 함께 올라와 엄청 맛있다)

 

 어느 날, 몸에 좋은 가지를 기어이, 꼭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 식빵피자 하듯 가지피자를 만들어보았더니, 다행히 잘 먹는다.

가지를 버터에 굽고 그 위에 토마토 페이스트, 치즈를 얹어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구우면 피자 같은 가지 요리 완성. 가지를 도우 삼아 피자처럼 만드는 것이다. 양파니 피망이니 버섯이니 넣을 생각을 했다간 이마저도 안 먹을 수 있으니 딱 치즈까지만!


 그날 이후, 장을 볼 때마다 가지를 사서 이 피자를 만들어주었는데, 싸움의 기술, ‘한 놈만 팬다’식으로 이 음식만 해댔더니 남편 왈,

“가지가지 하십니다~”

그래서 이 음식 이름이 우리 집에서는 ‘가지가지한다’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들이 특히 좋아해서,

“엄마, 가지가지한다 해주세요.” 할 때마다 뉘앙스가 멜랑꼴리해서 웃음이 나는 재미있는 음식이다.


가지가지한다... 토마토가지피자


  ‘으이구, 참, 가지~가지 한다’ 하면 쓸데없는 것을 반복한다거나 안 좋은 일 또는 실수가 반복될 때 등 나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야~ 가지가지 한다!’ 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잘할 때 감탄의 의미로도 쓰인다.

  

 여름철 요리계의 만능 탤런트, ‘가지’가 여러 가지 좋은 효능으로, 다양한 조리법으로 가지가지 열 일하듯이, 나도 가지가지 열 일하고 싶은 것이다.

‘가지야, 참 너는 좋겠다.’



 *) 2015년 <냉장고를 부탁해(39회)> 에서 박준우 기자가 ‘ 가지가지한다’라는 요리명으로 미카엘 셰프에게 패한 이야기가 있네요.^^


**) 가지는 안토시아닌, 폴리페놀 등 항산화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 동맥경화 암 예방 및 개선, 콜레스테롤 상승억제 시력향상에 도움이 되며 빈혈예방 뇌기능 향상 등의 효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토시아닌은 인슐린 생성량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또한 수분 함량이 높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며 식이섬유와 수분이 풍부해 장내의 노폐물 제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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