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Aug 21. 2020

콩나물비빔밥의 화려한 변신

예쁜 꽃 고이 얹어 향기까지 먹습니다

# 콩나물과 이주일


“콩나물 팍팍 무쳤냐?”

콩나물, 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왜 하필 콩나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하는 故 이주일 씨의 이 말은 그의 외모와 행동, 말투와 억양까지가 입체적으로 떠올라 미소 짓게 한다.

2주일 만에 조용필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로 떠서 이름도 ‘이주일’이 되었다는 코미디언계의 전설은 80년대 안방극장을 점령했고 국민스타가 되었다.

더불어 그가 외쳤던 콩나물도 국민반찬 반열에 우뚝 섰다. 집집마다 콩나물을 키워 먹었고 심심하면 어머니들은,

“콩나물국을 끓일까? 무쳐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두 가지를 다 하셨다. 콩나물 가격은 지극히 서민적이었고 음식을 해놓으면 누군가는 먹게 돼 있다는 진리를 알고 계셨음이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람들을 웃겼던 그는,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코미디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웃으며 국회를 떠나 방송계로 복귀했고 금연운동에 앞장서다 2002년 8월, 이 무렵 별세했다.


콩나물이라도 팍팍 무쳐서 많이 드시고 가셨는지 모르겠다.


# 콩나물과 할머니

우리 집 거실 한 편에도 콩나물시루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유일한 콩나물시루 관리자였다.

“오며 가며 물 한 바가지씩 부어주고 댕겨”

할머니가 신신당부를 해도 듣고 실천하는 식구가 없었다.

관심을 두지 않아도 콩나물은 검은 천을 밀고 쑥쑥 올라와 있었고 그 순간부터 식구들은 콩나물밥, 콩나물국, 콩나물 무침, 콩나물 찜, 콩나물 잡채까지 콩나물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에 물까지 주는 아량을 베풀기 힘들었던 것이다.

식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새벽 댓바람부터 할머니는 물을 주셨고,

“쭈르륵~ 출출~ 똑•또~ 옥 똑!”

시루에 물 떨어지는 소리는

산사(山寺) 처마의 낙숫물처럼 얌전했으나

아침 선잠을 깨우는 짓궂은 모닝벨처럼 들렸다.


콩나물시루를 애물단지처럼 여기며 콩나물을 길러내었던 할머니의 정성과 부지런함이 내 키를 자라게 했고 내 몸을 살찌웠다.


할머니 덕에 콩나물은 원 없이 팍팍 무쳐 먹고 지냈다.


# 콩나물과 나

 몇 년 전, 나도 옛 생각을 하며 이천 도자기축제에서 시루를 사 와 콩나물을 키워보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매번 실패했다. 식물도 그렇지만 죽이는 건 전문가인데 키워내는 데는 영 젬병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식용꽃, 30 송이에 3,000원인데 택배비도 3,000원이다. 배 보다 배꼽이 크지 않아 다행이다.

그 후로는 아무 미련 없이 열심히 사 먹고만 있는데, 이 콩나물이 가끔은 맹숭맹숭하고 서걱대는 게 영~재미가 없는 거라.

숙취해소에 효능이 있으나 우리 집에서는 해장은 황탯국이고, 볶음요리에도 콩나물보다는 숙주나물을 사용하니 정말 안 팔리는 음식재료요, 천덕꾸러기 신세다.


‘남자의 변신은 무죄’라 했던가? 콩나물비빔밥의 변신을 시도해 본다. 변신을 도와줄 식용꽃은 대형마트의 유기농 코너에 있긴 하지만 인터넷 주문이 택배비까지 포함해도 싸고 싱싱하게 배달돼 온다.


몇 년 전 어느 날도 꽃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해먹었구나(좌)


 나는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꽃집에서 꽃을 사 오거나 식용꽃을 사서 음식에 넣어 먹으며 눈요기를 하는데, 내가 나를 위해 주는 존중과 위로의 선물이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식용꽃 종류가 엄청 다양해졌고 계절에 따라 종류도 달라진다. 오늘은 금잔화, 미니 팬지, 패랭이꽃, 한련화, 미니 카네이션 등이 오셨다.



어디 한번 야무지게 콩나물비빔밥 팍팍 비벼 볼까나?


<각자의 아침> 표지사진은 나의 콩나물비빔밥. (좌)육식주의자, 예의상 꽃 얹은 딸의 소고기비빔밥. (우)또다른 육식주의자, 아들의 소고기비빔밥. 콩나물 NO, 꽃 NO!

# 콩나물 없는 비빔밥을 먹는 식구들

 채식주의자, 아니고 육식주의자 식구들은 콩나물 없는 소고기 비빔밥을 해 먹는다.

같은 재료, 다른 식사다. 3인 3색의 아침 식사.

학교 급식 메뉴에도 분명 ‘콩나물비빔밥’이라 되어 있는데 이들은 야채를 뺀 ‘고추장 비빔밥’을 먹는다고 한다. 굳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비빔밥의 생명은 콩나물인데,

이들은 영혼 없는 비빔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 콩나물의 효능

 콩나물 100g에 들어있는 비타민 C의 양은 13mg으로 동량의 사과에 비해 세 배 수준으로 높다.

또한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 숙취 해소를 돕기 때문에 해장국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중국이 원산지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이용한 기록이 있다.


# 꽃 고이 얹은 콩나물 비빔밥 먹는 방법

눈으로 음미한다 : 나는 고상한 취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향기를 마신다 : 음식에 취할 마음자세를 잡으며..

양념간장을 넣는다 : 영혼까지 듬뿍 담아서...

가차 없이 비빈다 : 음식 앞에 자비란 없다의 심경으로...

맛있게 먹는다 : 그러나 살은 안 찌길 바라며...

빈그릇에 오래 시선을 둔다 : 조금만 더 먹을까? 번뇌하며...

물을 마시며 마무리 : 저녁에 또 먹어야지, 야망을 가득 담아...



 덥고 짜증 나는 여름날, 코로나 사태로 집콕하며 우울하고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색다른 변신을 한 콩나물비빔밥, 팍팍 비비며 더위와 스트레스를 날려볼 일이다.


“콩나물비빔밥 팍팍 비볐냐?”



매거진의 이전글 가지가지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