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Aug 28. 2020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가시죠

한여름에 곰국으로 끓이는 떡국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개학은 하였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한다는 건, 고도의 인내와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보다 어쩌면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영혼을 탈탈 털릴 수도 있다. 참지 못하고 욱~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

말빨, 정신빨 충만한 고2, 중2 고위험군이다.*)


서로의 공간을 넘지 않을 것이며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 나눌 것이며

‘왜 쳐다봐?’ 시비의 소지를 없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주기도문을 외듯 정신줄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그리하여 특히 식사와 관련, ‘사전 예약제’를 시작한 것인데

라면이나 토스트 등 각자가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점심은 알아서 해 먹겠습니다” 하며 미리 고지한다 => 그럼 신경 쓰지 않으니까.

온라인 수업이나 여타 개인 스케줄이 식사시간과 맞지 않을 경우, “몇 시에 먹겠습니다” 밝힘으로써 식사시간을 조정하거나 그 시간에 맞춰 차린다 => 힘들여 차려놓고 먹니, 안 먹니 실랑이 벌이지 않아서 좋다.

고기류 같이 해동을 해야 하는 음식의 경우, 하루 전날 “내일 아침, 삼겹살 구워 먹고 싶어요”라고 밝힌다 => 음식 준비하기가 수월하고, 원하던 메뉴이니 만족스러운 식사시간이 된다.

외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저녁에는 족발 시켜 드시죠” 요청한다 => 편하게 식사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

이런 것들인데, 서로의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시간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범사례가 되지 않을까?



내일은 뭘 먹나?

 엄마들은 예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먹는 일에 걱정하고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밥 못 먹고사는 시절도 아니고, 정작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빵 먹으면 되지, 과일 먹고 그냥 때울래, 편의점에서 사 먹지 뭐, 시켜 먹으면 되지, 있는 거 대충 먹으면 돼요, 한 끼 안 먹는다고 어떻게 안돼, 엄마는 왜 그렇게 먹는 거에 집착을 하세요?

아이들은 얘기하지만 참, 그게 안된다.

애들 말대로 한 끼 안 먹는다고 큰일 날 일은 아니지만, 걱정하게 되는 건 아기 때부터 항상 챙겨주던 습관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글쎄? 뭘 먹지?”라고 되레 반문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머릿속으로는 ‘뭐 먹으려냐고 묻지 말아야지’ 하면서 몸은 먹이 물어다 주는 영락없는 ‘어미새’가 된다.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가시죠!
냉동칸에 항상 보관되어 있는 곰국과 각종 고기들


어제는 정확한 의사표현을 해 준 아들의 이 한마디가 오히려 고마웠다.

메뉴를 주문해 주면 셰프는 고민 없이 음식만 만들면 되니까 지금부터 일사천리인 게다.


그런데 아들아, 국밥이라고 했니? 잘못 들은 건 아니지? 할아버지 버전인 것이냐? 한 여름에 뜨끈한 것을 찾게? 기가 허한 것이야? 보양식이 먹고 싶은 것이냐?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오케이!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대령 하마.


그래서 준비했다, 곰국으로 끓인 떡국!

양지머리 삶아서 양념하고 계란, 김 고명 준비하고...
우리 집 냉동실에는 곰국이 산다.

나는 1년에 2번 정도씩 장사 집처럼 곰국을 끓인다.

옛날 엄마가 하시던 그대로, 사골과 족 혹은 꼬리와 양지, 스지 등속을 넣어 곰솥으로 2개를 끓이고 식혀서 기름 걷어내고 다시 물을 부어 2차, 3차까지 끓여서 팩에 넣어 보관했다가 그때그때 꺼내 먹는다.


제대로인 곰국을 먹고 싶으면 양지와 스지 등을 팍팍 끓여 곰국과 섞을 일이지만, 떡국을 끓일 경우는 양지고기만 삶아서 찢어 양념만 하면 되니 한결 편하다. 고기는 한 번 삶을 때 많이 삶아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으면 다음부터는 거저먹기다.


소면을 삶아 곰국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도 있겠으나, 오늘은 떡국을 하기로 했다. 그게 좀 더 든든할 것 같아서다.


여기저기서 후루룩후루룩 소리가 경쾌하다.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소리다.

먹고 있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그러하다.

정성이 담긴 따뜻한 음식이야말로 긴장을 풀어 주고 스트레스를 날리는데 효과적이다.  


후루룩~~

언택트 시대의 우울을 날려버리고,

후루룩~~

바이러스를 날려버리고,

후루룩~~

오늘도 가열하게**) 살아볼 일이다.



*) 말발, 정신발이 옳은 표현이나 어감상 말빨, 정신빨로 씀.

**) ‘가열차게’로 알고 있었는데 ‘가열하게’가 표준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콩나물비빔밥의 화려한 변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