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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Dec 09. 2022

데드라인에 발목이 잡히느냐, 멱살을 잡느냐

"어차피 할 거면 지금 좀 하시지!"

- 데드라인, 완전 칼 같이 지킵니다.

준비된 원고를 신문사에 보내기 위해 프린트를 하며 단체톡에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완전 멋있게 보이지 않느냐 너스레를 떨어가며 말이다.

- 오늘 마감인데 방문 접수하려고요?

함께 신춘문예 응모를 작심한 그의 질문이 어째 좀 수상하다.

- 그럴 리가요. 우편 접수할 건데, 당일 소인 유효.

마감일은 오늘이지만 '당일 소인 유효' 카드를 제시하며 당당하게 응수를 했다.

철저하고 야무진 공대생일 수밖에 없는 그가 살뜰히 캡처한 데이터를 보내왔다. 두 군데 중 한 곳은 원고 도착일이 마감이었다. 아, 그것까지 미처 계산에 넣지 않았다. 털팔이에 성격 급하고 치밀하지 못한 허당, 그리고 깜빡이까지 3종 세트를 장착하고 있는 나다운 완벽한 증명이었다. 이쯤 되면 누구 말대로 막가자는 거다. 폭망의 조짐이 보였다.

- 이 모양이니 될 리가 없지요.

낙담하고 있을 때, 자상하기까지 한 그가 원고 매수 80매 분량 제출에 마감일이 남은 다른 신문사를 두루 살핀 후,

- ㅇㅇ신문 남으셨습니다.

콕 집어 일러주었다.

- 네. ㅇㅇ 갑니다. 1시 접수.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이를 갈고 뼈를 깎는 고뇌의 시간을 보낸 응모자들이 한 둘이 아님을 알기에 당선될 리 만무하다며 시도하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자 생각한 모험이지만 그래도 원고매수 맞춰가며 며칠은 궁리하고 글을 썼는데 문전에서 쫓겨나는 일은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는 일 아닌가. 다행히 원고를 보낼 신문사가 남아있다는 말에 힘입어 우체국에 들러 원고를 2군데 접수하고 돌아왔다. 데드라인 어쩌고 하다가 창피를 당하고 만 하루였다.


  그런 한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배는 고파오는 것이어서 우체국 옆 칼국수집에서 웨이팅 줄까지 서가며 칼국수를 보약 먹듯 한 그릇 해치웠다.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러고도 밥이 넘어가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들리는 듯도 했다.

 "밥이 아니고 칼국수거든요. 당연히 잘 넘어가고 말고요."

나는 이런 대답을 상상하며 비식 웃었다.

 "마감 후엔  칼국수죠. 불로칼국수."

이런 위로의 말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도 계셨기에,

 '해냈노라! 살았노라! 다시 젊어졌노라!' 마음속으로 외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야 말로 젊어지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데드라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다. 데드라인의 긴장과 스릴을 즐긴다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내일 해도 되는 일은 내일로 미루자'는 생각으로 게으른 일상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기한을 정해 놓고 하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이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매일 혹은 매주 돌아오는 기사를 송고할 때마다 시계를 보며 뇌에 갇혀 있던 생각들을 짜내고 끄집어내던 예전의 생활패턴이 습관으로 고착돼 버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기한을 아슬아슬 맞춰낸 후의 짜릿함이란,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과도 연결된다. 팽팽하던 활시위가 손을 떠났을 때의 후련함과 마감을 하고 난 뒤 찾아오는 안도는 어찌나 닮은꼴인지.


 요즘은 데드라인의 긍정적인 효과를 일하는 방법으로 사용을 하더라. 급박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되고 학습능력, 업무 수행능력이 대폭 향상되는 것을 '데드라인 효과'라고 한다. 이런 효과를 이용해서 자신이 정한 계획들을 실천해 나가면 짜릿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며 창의적으로 일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도 익히 알고 있다. 시험 치기 전날, 벼락치기를 하면 글자들이 일제히 아우성을 치며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 면접관의 질문을 받자마자 수많은 문장들이 좌우 전후로 칼각을 맞추어 진형이 정렬되는 경험. 마감 직전, 마지막 퇴고를 할 때 오탈자가 눈에 쑥 들어오며 매끄럽게 수정되는 경험. 퇴근 시간에는 하던 일과 주위를 정리하는 손에 모터가 달리는 경험. 약속 시간에 맞춰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폭발적으로 빨라지는 경험...


  데드라인 효과를 너무 잘 알고 있고 스릴을 즐긴다고 하는 나는 왜 번번이 데드라인에 발목이 잡히고 마는 것일까? 올해 들어서만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마감 기한을 놓쳐 응모조차 못한 일, 데드라인에 딱 맞추려다 일이 꼬여 여러 사람에게 사정을 고하고 시한을 미룬 일, 엉망으로 마무리해 버린 일 등 그야말로 체면 구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데드라인 운운하는 이 와중에도 이 일은 벌써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고 나는 일주일이나 지난 오늘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데드라인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거릴 거면 이제는 데드라인의 멱살을 잡을 때다. 이 녀석의 밭다리를 걸어 들어 메치기 한 판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만의 데드라인 정하기! 데드라인의 80% 정도에 기준점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한 달 기한에 마감이 30일이면 25일까지 모든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기로 나와 약속을 해두는 것이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25일까지 할 것. 이 방법을 쓰면 데드라인의 묘미는 살리면서 마무리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할 거면 지금 좀 하자, 제발.'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도 하지만 일단은 계획대로 되었다. 이 글의 발행을 12시까지로 정해 놓았지만 11시에 발행을 하는 지금, 데드라인의 멱살을 제대로 잡았구나!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꼼수'의 달인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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