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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r 26. 2021

오늘, 장학금을 기탁하고 왔다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는 것이 ‘사는 맛’이다

  오늘, 장학금을 기탁하고 왔다.
장학금이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다.
사비를 털어 기부금을 낸 것도 아니고 금액도 그리 많지 않아서다.  ‘학교발전기금’ 이란 항목의 '학생복지' 세목에 체크를 했다. 볼펜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가슴이 보름달처럼 푸근히 차오르는 느낌을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행정실에 앉아 기탁서를 작성하는 5분 여의 짧은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의 학부모회장이다.’라고 쓰자니 옆에서 누군가 ‘그래서? 어쩌라고?’ 가자미 눈을 뜨고 볼 것 같아 기가 죽는다. 쑥스럽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작년에 이어 올해 연임이다.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A’ 정도의 성적표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잘할 때까지 가만 안두겠어!’의 의미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부터 학교 봉사일은 꾸준히 했다. 첫째 때부터이니 지금까지 12년 째다.

사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봉사일에 골머리를 앓는다. 도서 봉사, 녹색어머니회, 폴리스, 급식도우미, 체험학습 도우미는 기본이고 각종 행사 도우미, 1일 교사 등 각종 직능단체에서 봉사를 해 줄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1인 1역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학교도 많다. 그러다 보니 그 일을 할머니가 대신하기도 하고 돈을 주고 알바를 구하기도 한다.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탄력적으로 모든 봉사단체 일을 한 번 이상씩은 해봤고 대표 직함까지 달고 활동하기도 했다.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관여하는 일은 크게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로 나뉜다. 운영위원회는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도 예우를 해주고 이력에 한 줄 써넣기도 본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회는 맡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봉사할 일은 많으나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다.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엄청 욕먹는 일이라 그렇다. 만만해 보인다는 얘기다. 동네북과 맞먹는다.


  학부모회 일 역시 꾸준히 해왔다.

요양원 봉사를 3년이나 했고 학생들의 봉사시간을 위해 함께 벽화 그리기도 했다. 자유 학년제 때는 체험처를 직접 선정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꿈의 학교도 2년을 운영, 교사로 활동하며 체험활동과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비롯 크고 작은 소위원회에서 감독하고 결정하는 일을 도왔다. 바시락 거리며 여기저기 분주히 쏘다녔다.


  이익을 원한 것도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다. 나서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할 일이 없어하는 심심풀이 땅콩은 더더욱 아니다.


  학부모가 학교에 들락거리는 걸 보는 시선은 아직도 곱지 않다. 옛날 치맛바람 휘날리며 촌지 주고 자식 내세우던 기억의 잔상이 남은 때문도 있겠고 곱지 않게 거들먹거리며 다니는 학부모도 가끔 있어서다. 험담의 주인공이 되어 도마 위를 오르내리게 되는 경우는 사실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소신에 기인한다. 학교, 학생과 더불어 학부모는 3 주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역할은 행복한 가정 만들기가 근간임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부모로서 학교에서의 역할, 사회인으로서 사회에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사회가 올바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언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향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허투루 쓰는 경구가 아니다.


  학부모회를 맡으며 나의 계획은 이런 소신을 바탕으로 했다. 아이들에게 힘과 응원을 보태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 아침 등교 시간에 나눠주며 ‘사랑합니다’ ‘힘내, 파이팅’의 말들을 전하는 아침맞이를 했다. 임원진들은 교육청에서 하는 연수를 듣게 했다. 교육청에 기획서를 제출해 예산을 확보, 강사를 섭외해 학부모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기획서를 제출, 예산확보를 통해 교복 물려주기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다른 계획도 있었지만 하지 못했고위의 네 가지 계획은 잘 실행되었다.


  비단 학부모회 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매사가 그렇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에서의 위치도 학교, 직장,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그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시스템이다.


 확보한 예산은 바르게 집행하였고 사업을 통해 약간의 수익금이 발생했다. 뿌듯했다. 역시 돈이 들어와야, 짭짤해야 기분이 좋다.

 ‘이 돈을 어이 할꼬?’ 여러모로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학교 장학금으로 내놓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함께 봉사를 해준 임원진도 의견에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


  거창하게 포장할 방법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는 맛’ 중 최고가 아닌가 싶다.


  ‘사는 맛’이 올해의 계획을 세우게 하는 힘이고 해낼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게 한다. 함께 봉사하고 장학금을 기탁할 수 있도록 동의해준 좋은 분들에게 감사하며 올해도 이와 같은 일들을 또 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일들이 학교 전통으로 내리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학교에 입장을 밝혔고 나는 ‘사는  맘껏 느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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