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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Sep 11. 2023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디자인과 디자이너, 달리기와 달리기 선수

나는 시각디자이너다. 공부를 시작한 지는 9년 차가 되었고, 현업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는 군복무 기간의 공백을 제외하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배워온 것보다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이 아직 많겠지만 누군가의 선배로서 혹은 동료로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지식을 다듬어나가면서 성장하고픈 마음에 글을 적어 내려 간다.


오늘은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꼭 한 번은 들어보았을 노먼 포터의 <디자이너란 무엇인가>의 제목을 인용하였는데 조금 과분한 제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먼 포터의 책처럼 심도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말은 많지만 그리 재미있지는 않은 디자이너 지인'의 글을 읽어 내려가길 바란다.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날부터 간혹 '디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디자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거나,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어렴풋이라도 내려지지 않는 나에겐 부모님 뻘인 어른들에게서 특히 자주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터넷 검색이나 관련 서적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그런 방식을 권하기에는 다소 무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눈앞에 디자인 전문가(?)가 떡하니 서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동안 책이나 강의를 들으며 정의한 디자인이란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답을 내놓는다면 아마 질문을 던진 상대의 물음표는 두 배가 될 것이다. '창의적', '합리적', '효과적'처럼 당최 추상적인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문장이니 그럴 만도 하다. 예시를 더하여 설명하면 조금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장의 종이를 보관하거나, 찾아보기 쉽게 엮어낸 책'은 '낱장의 종이는 읽어버리거나 훼손되기 쉽다는 문제'를 '하나의 덩어리로 엮어내면서 해결해 낸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설명을 해주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참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위 '디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은 정말 넓은 범주의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디자인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시각디자이너로서 나를 설명할 때 더욱 전문적인 인상을 주면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디자인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다. 아침잠이 많아 일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지하철이 오는 시간에 딱 맞춰 집에서 출발하는 일이나 지각을 면하기 위해 강의실까지 뛰어가는 일 등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디자인적 사고방식에 의한 결과이다. '잠'이나 '지각'과 같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모든 사람은 디자인한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란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 것일까?


디자인이 그렇게 일상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라면 아마 걷거나 달리는 행위와 같은 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체적 장애가 있어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든 이들은 걷거나 뛴다. 심지어 태어난 지 몇 개월만 지나면 첫걸음을 떼고 수십 년 평생을 걷고 뛰며 살아간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위지만 그중에는 경보나 단거리와 같은 종목의 선수들이 존재한다. 어느 것보다 당연한 행위를 더 빠르게,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사람, 한 마디로 '잘 달리는 사람'이다. 아마 그렇게 훈련하지 않은 일반인과는 체감할 만큼의 차이를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디자이너란 일상적이고 본능적인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더 잘하기 위해 훈련하고 일반인과는 체감할만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잠시 디자인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고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행위는 시각디자인 중에서도 일부이니 모든 디자이너를 대변하지는 못 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 둔 채 글을 이어가겠다. 자,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일반인과 어떤 부분에서 체감할만한 차이를 보여야 할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창의성', '합리성', '효율성' 세 가지이다. 디자이너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 시점에서 이미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해결책이 꼭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디자이너라면 이러한 문제 발생 시점에서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아마 디자인을 맡긴 이에게 신뢰를 잃고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디자이너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충분한 논리가 뒷받침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내 눈에 좋아서'가 아닌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석을 통한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디자이너가 그동안 쌓아온 안목과 미감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단순히 그 안목과 미감만을 믿고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된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헬베티카나 푸투라(외에도 많지만) 서체에 푹 빠져서 모든 과제에 사용하는 일이 간혹 보이는데 디자이너로서 경계해야 할 작업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는 효율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도출된 답이라고 해도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요소가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자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낼 기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가지 요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번 이야기에 이어가 보겠다.



1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은 4년 남짓 되었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만 가득하지 막상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기술을 배우기엔 열정이 모자라서 다소 거칠고 요상한 문장을 자주 뱉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이 내 글만이 가질 수 있는 맛이 아닐까? 자만스러운 태도지만 그것 또한 나만의 맛이다.

2 반년에 한 번씩은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데 좋은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면 다시 글을 올리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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