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일까 도박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한 드라마가 개봉한다는 말은 진즉 들었다. 한국만 공개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실제로 찾아보니 다른 국가들에서는 6월 1일에 개봉이 되었는데 한국에서만 7월 20일에 공개가 되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논란이 큰 상황이라, 원전 사고의 끔찍함을 담은 드라마가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떤 누군가가 일부러 늦췄거나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래서 보았다. 원래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어지는 법 아니겠는가?
원전 사고 관련 드라마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에 본 체르노빌도 있었다. 체르노빌은 왓차에 가입하게 된 계기였다. 그만큼 관심을 가졌던 건데, 관심을 가진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원전 폭발로 시작하는 체르노빌은 첫 화부터 너무 끔찍해서 몇 번이나 꺼버리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3번의 원전 폭발이 있었고, 내가 성인이 된 후 인근 국가에서도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정말 난 놀라울 정도로 원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무색무취의 방사능. 당장 목이 아프고 시야를 누렇게 만드는 황사랑 미세먼지보다 방사능이 기분 상 낫다는 농담까지 했었는데… 무색무취의 방사능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쩌면 원전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 끔찍함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체르노빌도 더데이스도 실화베이스라 기술적인 정보의 나열이 있었고, 문과인 나는 당연히 다 이해하지 못했다. 두 드라마 공통의 감상으로는 매우 처참하다는 것이다. 피폭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덜 피폭이 되면 상냥한 버전으로 암 같은 질병에 걸리게 되고 더 피폭이 되면 매운맛 버전으로 피부와 장기가 다 녹아내리게 된다. 무색무취의 방사능… 급격히 고농도의 방사능에 노출이 되면 인간은 구토를 했다. 방호복을 입고 방독면을 쓰고 산소통을 메도 피폭이 됐다.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근처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인간도 기기도 모두 불능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체르노빌 때는 피폭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인권도 낮았고 전체를 위해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당하는 공산주의였기에 진정한 의미의 결사대(당사자들은 죽을 운명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를 투입했다. 인간은 기기와 달리 피폭이 되어도 몸이 망가지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국 국민들의 생명을 희생하여 일정 부분 사고의 뒷수습에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도쿄전력(극 중 토오전력)의 직원? 연구소원? 들의 생명을 최우선했다. 그 결과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방사선량이 높은 곳에는 갈 수 없으니까 그저 속수무책 사고가 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인명을 중시한 극 중 소장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영웅시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영웅이 맞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저 사람들 군인도 아니고 그냥 저 전력 회사 직원들 아냐? 왜 위험을 감수하고 밸브를 열러 가? 명령에 따를 필요 없는 것 아냐? 그냥 퇴사하면 되잖아!‘
도중에 방사선량이 높아진 현장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읍소하는 상사를 두고 결국 떠나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의 직원이었기에 누구보다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그들이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면서도 떠나지 않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이타심과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방사선량 때문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던 이들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잘못으로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책임지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럼 누구의 책임일까? 누가 ‘결사대’가 되어 목숨을 지불하고 지구에 닥칠 재앙을 막기 위해 방사능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뒷수습을 해야 할까?
그 원전을 설계한 자. 원격 회의로 화면 너머에서 입만 나불거리던 결정권자들이 결사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결과를 알고 있고 사고가 발생하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일본은 원래 지진도 많은데 바다에 면한 원전을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깨끗한 에너지. 저렴한 에너지. 원전 찬양론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지원을 나갔던 불쌍한 자위대, 군인들만 희생되었다. 한국에서는 원전 사고가 나면 누가 결사대가 되어야 할까? 목숨을 걸고 방사능이 유출된 원전에 남을 직원들에게 기대야 할까? 또 군인들이 소집되겠지?
몇 년 전 전력부족이 다 문재인의 탈원전 때문이라며 비난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문재인 측에서는 본인들은 탈원전한 게 아니라며 둘러대기 바빴다.
탈원전해야 하지 않을까? 왜 탈원전이 이토록 금기시되는 걸까? 원전은 사고가 나면 답이 없다. 결사대가 대거 희생되어 다소 피해를 막든 아니면 전 세계가 모두 방사능 피해를 뒤집어쓰든 그 지역,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라 여겨지던 한국 인근 해역에서도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한국은 쓰나미까지 오지 않아도 지진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지진 대책이 되어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힘도 들겠지만…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수고로움을 감수할지 말지 결정의 문제지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원전 사고가 났을 때에 대한 각오가 되어있는 걸까. 그걸 감수하겠다고 동의한 걸까? 아니 나처럼 원전이 뭔지 어떻게 방사능이 작용하는지 다들 모르는 것은 아닐까? 막연히 우린 안전할 것이라는 안전 불감증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절대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도박을 건 걸까.
만약 도박을 한 것이라면,,, 판돈은 우리 모두와 가족, 아이들의 목숨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원전 폭발로 발생한 fall-out 낙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던 시민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