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잘 해오고 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발라드 4번’을 들으며,

by 박독자

“책상에 앉았으면 바로 공부를 시작해라”

“책 펴놓고 뭐 하는 중이니”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다른 짓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그런 자신에게 정신 차리라고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이

당신에게는 더 큰 몰입을 불러오지 않는가?


[유니클래스]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 발라드 4번을 말하다(출처: 유니버셜뮤직클래식 YOUTUBE)

여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 영상이 있다.

다음은 그 연주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 묘사다.

(본인의 클래식에의 얕은 조예를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영상의 시작에서 그는 곡과 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is song is already started"

팔을 치켜들어 손을 적당히 오므려 부드럽게 한 바퀴 젓는다.

물살 갈라 나아가는 것 같은 행위는 순간의 의문을 자아낸다.

이윽고 산재했던 곡의 기운이

부드럽게 움켜쥔 그 손에서 연주가 되어 건반으로 녹아든다.

분위기와 공기의 흐름이

그 다섯 손가락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간 것이다.

점입가경 하여 연주자와 악기, 곡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발라드 4번’ 그 자체가 된다.

마치 ‘발라드 4번’의 매 음표를 음미하듯

곡의 선율에 심취하며 연주한다.




그 의문스러웠던 팔젓기는,

‘already started song’을 소리로 구현하는 도약이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말하는 ‘already started song’은

피아노 연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곡은 이미 시작했고,

우리는 이미 살아있고,

시간은 이미 흘렀고,

사건은 이미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곡의 기운을 살며시 잡아

건반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조성진처럼,

우리는 그 ‘이미 시작된 것’을 눈앞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의문스러운 도약 해야 한다.



책을 펴려고만 하면

침대 위 덩그러니 놓인 이불을 각 맞춰 정리하고,

운동을 가려고만 하면

출근길 듣던 노래가 감미로워 더 심취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갖고 자책하며 부끄러워 웅크린 그대,

고개를 들라.



우리는 이제 자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리라.

책을 펴 두고 잠시 침대를 정리하며

사뿐하게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운동을 가는 길에 음악 속에 명상하며

몰입의 순간에 조심스레 놓이고,



우리는 '이미' 잘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