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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May 10. 2020

코로나 시대의 휴가법, 보안여관(Boan1942)

통의동

What 보안여관(Boan1942)

Where 서울 종로구 효자로 33

Detail b1942.com

Mood 떠나지 않고도, 여행자의 기분을 환기하고 싶다면


코로나19 인한 ' 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하며, 우리는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야외 활동에 제한이 가해지면서, / 비대면(언택트)/  온라인 등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가해졌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  닿는 분야는 문화예술과 여행 산업의 고통이다. 평소 즐겨가던 미술관, 박물관, 공공 도서관 등이 무기한 휴관을 하고(5월부터는 온라인 예약제를 통해 조금씩 정상화를 이뤄가는 중이다), 영화관의 상영시간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여행은 당분간 아예 꿈꿀  없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에는 예고 없이 따스해진 녹음의 계절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만끽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올해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다정한 날씨를 그저 한정된 공간에서 누려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에 비한다면 과거에는 마치 다가오는 여름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던 것만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휴가를 맞이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계획 없이, 평일에 누리지 못했던 낮시간의 여유나 마음껏 즐겨볼 계획이었다. 늦잠을 자고, 햇살이 쏟아지는 동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죽은 채로 연휴를 기다리고 있었을 , 나의 오랜 여행 메이트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우리가 애정하는 동네인 서촌에 숙소를 잡고 푹 쉬다 오자는 이야기였다. 사실 우리는 서촌이라는 한 단어로도 새로운 대화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를 좋아했다. 언제나 걷기 좋은 곳이자, 가도 가도 또 가야 할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숙소에 머물 것인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전부터 경복궁 돌담길에 위치한 '보안여관'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 저곳에 머물러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이 딱 적기라고 생각했다. 멀리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선인 느낌. 버스로 20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결코 집 근처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곳.


이번 휴가지로 보안여관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현재 '보안1942(Boan1942)'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건물에 숙소(보안스테이), 카페(33마켓), 갤러리(보안여관), 책방(보안책방)이 모여 있어, 말 그대로 계단만 오르내리며(물론 엘리베이터가 있다)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보안여관은 1936년부터 여관이었는데,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2010년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벽면부터 기둥, 목재 등 대부분이 그대로 '보존'된 형태로 말이다. 2017년에는 갤러리 보안여관과 통로를 맞대어 이어지는 구조의 복합건물, 보안1942로 재탄생했다.  


*보안스테이는 컬처 노마드들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임시 거주의 형태를 구현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울의 교통 요지이자 문화, 역사의 중심지인 서촌에 자리해 북악산과 경복궁, 청와대, 서촌의 한옥 등 주변의 특색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으며, 내부 객실은 휴식과 이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간결하고 절제된 구조와 색감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품과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부분 보안1942 홈페이지 설명 인용) 서정주, 김동리, 이중섭 같은 예술가들이 머물렀었다는 문화예술 생산의 플랫폼답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최적화되어 있었다.


과연 보안여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전반적인 시설이나 구조는 가격대를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침대 두 개, 책상 하나, 작은 냉장고 하나라는 단순한 2인용 방 구조, 그리고 공용 주방과 공용 욕실. 하지만 이 숙소의 백미는 벽면마다 위치한 통유리창이다. 경복궁 돌담길 위로 대차게 자라난 나무들이 창문을 온통 초록으로, 연두로 물들인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낯설지 않으면서도 생경하게 다가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액자 속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그저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지킬 보(保)', '편안 안(安)'이라는 뜻의 '보안'은 이름 그대로 머무는 내내 평안을 안겨 주었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통인 시장에서 저녁거리 장을 보고 -> 보안스테이에 체크인을 하고 -> 보안여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보고 -> 보안책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구매한 뒤 -> 사직동의 마당 있는 카페 스태픽스에서 여유롭게 낮 시간을 보내기 ->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고 -> 방에서 와인 마시기. 우리는 침대에 누워 랜선 여행을 하듯, 과거에 함께했던 여행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한참을 깔깔댔다. 그러다 친구가 한마디 했다. "사실 우리 비행기 타고 멀리 여행 가도, 제일 좋아했던 순간은 이렇게 계획 없이 걸어 다니고, 장 봐서 요리해 먹고, 와인 마시며 취했던 시간이었어ㅋㅋ". 그녀의 말마따나 그리웠던 여행의 순간은 여행지에 관계없이, 그저 잘 맞는 친구와 함께 계획 없이 행동하고, 웃으며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의 휴식은, 일상을 전환하는 데 충분한 '환기의 시간', 결국 '여행의 시간'으로 수렴한다. 포개지는 마음 안에서.


More Info+

보안스테이는 전체 금연시설이고 공용 부엌, 테라스가 있다.

어매니티로는 수건 4장, 포켓 커피 2개가 전부, 샴푸, 바디워시는 공용 욕실에 있다.

눈에 띄는 구비물로는 오디너리 잡지가 있었다.

방에 놓여 있는 책자에 서촌의 카페, 밥, 술집 정보가 담겨있다.

보안스테이 손님에 한해 33카페 10%, 보안책방 5% 할인쿠폰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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