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l Oct 13. 2020

빛속에 있는 볼륨의 장엄한 유희,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문발동

What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

Where 경기 파주시 문발로 253

Detail 수~일 10:00 - 18:00

Mood 변화하는 빛의 각도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예술 공간



우연히 집어 든 잡지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동기부여 전략 중 하나인 '유혹 묶기(Temptation Bundling)'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타협할 수 있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묶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될 때, 내가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며 공부를 하는 것 또는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움직여 보는 것이다. 이 단락을 읽을 당시 나의 머릿속에는 '출근하기 싫다'가 가득했던 추석 연휴의 끝자락이었으므로, 꽤나 설득적으로 들렸다. 적절한 보상책을 수행 과제와 묶어 실행한다면, 보다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파주 사옥으로 출근하는 날이 다가왔다.(현재 나는 파주와 북촌을 오가며 일한다.) 사실 합정역에서 버스로 20~30분이면 파주 출판단지에 닿을 수 있지만, 심리적 거리로 따지면 곱절은 멀게 느껴진다. 내게 '유혹 묶기 전략'을 부여하자면, '회사 근처의 멋진 공간을 찾아가서 업무를 수행하며 커피 한잔 마시기'가 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내는 동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이곳은 출판사 '열린책들'이 세운 미술관으로, 열린책들의 예술 서적 전문 브랜드 <미메시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2009년 완공된 이 미술관은 '건축계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를 맡았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이 백색의 건축물은 일반적인 사각 형태가 아닌, 부드러운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흰 파도가 햇살이 쏟아지는 풀밭에 유유히 흐르는 듯 보였다. 이때 시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또 다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건축은 빛 속에 있는 볼륨의 장엄한 유희이다.'





 빛으로 미술관(Museum with Light)



미메시스는 아트 뮤지엄에는 자연의 빛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알바루 시자의 이념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곳에서는 작품을 비추는 '핀 조명'을 찾아볼 수 없다. 전시실 내부에 인조광을 가급적 배제한 것이다. 대신 자연광을 끌어들여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빛의 향연을 선물한다. 내부의 커다란 창문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바깥의 경치를 그 자체로 '전시'한다. 관람객은 이 사각형의 창을 통해 살아 있는 작품을 보게 된다.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BOOK+IMAGE 8: 예술가의 삶 반 고흐, 프리다 칼로] 그리고 [MIMESIS ART  PERSPECTIVE:2020 MIMESIS ART MUSEUM COLLECTION]展이다. 1층에서는 그래픽 노블에 실린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의 일러스트 이미지를, 2·3층에서는 7인의 한국 작가들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어렵지만 계속해 나간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전시장의 도슨트분께 왜 많은 그래픽 노블 시리즈의 예술가 중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를 꼽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고흐와 칼로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두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인생이 비극에 가까웠을지라도, 끝끝내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것이 아닐까. 세상사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이 아닌 '사랑'을 이야기하는 두 예술가를 보며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어려운 시대에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시장 속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고흐 작품은 대체적으로 밝고 따듯하다. <반 고흐> 그래픽 노블의 저자 바바라 스톡 Barbara Stok은 춥고 암울했던 파리에서 벗어난 고흐가 프로방스의 아를에서 지내던 시절을 그렸다. 손에서 붓을 놓지 않던 고흐의 열정이 그림 안에서도 엿보였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그린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스스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며,
그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사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언제나 사이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지만).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프리다 칼로는 대체 어디에 정서를 기대며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다."라는 칼로의 말에는 그녀의 삶이 응축되어 있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인해 삼십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여성 편력이 극심했던 남편 디에고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비운의 삶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의 열정은 작품 속에 담겼다. 강렬하고도 과감한 색채와 형태. 반나 빈치 Vanna Vinci가 그래픽 노블로 재현한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짧은 인생을 극적이면서도 대담하게 그려냈다.







그곳은 마치 하나의 공허한 세계와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단순한 방법의 점, 선, 면이 모여
입체적 <장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가득 차 있다.
- 뤄징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절제된 아름다움은 2·3층 전시장에서 극대화되었다. 계단을 오르자 드러난 원형의 창으로 빛이 부드럽게 너울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광의 양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조도를 감각할 수 있다. 밝았다가 불현듯 어두워지는- 일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응하는 울림이 느껴진다.


일상의 변주를 위한다면 예술만큼 쉬운 방법은 없다. 텅 빈 공간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은, 우리의 영혼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표표히 흘러가는 삶 속에서 공허를 느끼지 않으려면 내게 '좋은 공간'에 기대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잠시 이곳에 정서를 기대고 나는 삶을 굴리는 힘을 얻었다.





개관 시간
전시, 카페, 북앤아트숍 (수-일)
11월부터 4월까지(11.1 – 4.30) 10:00 – 18:00
5월부터 10월까지(5.1 – 10.31) 10:00 – 19:00


관람 요금
성인: 5,000
학생: 4,000 (8~18세)  
단체: 4,000 (20인 이상 사전예약 시)
복지카드 소지자: 4,000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
미취학 아동: 무료 (3~7세, 보호자 동반 하에 관람)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와 미술관, 테라로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