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동
What 테라로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점(Terarosa)
Where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Detail 화, 목, 금, 일 10:00-18:00 수, 토 10:00-21:00 Last order 17:30, 월요일 휴무
Mood 커피의 맛을 더욱 그윽하게 만드는 공간을 찾고 싶다면
가을의 한복판이다. 길게 늘어선 어느새 가로수는 각자의 푸르름을 잃고, 오후의 햇살을 닮아 있었다. 노랗다 못해 황금빛으로 빛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붉은 나뭇잎이 밟혀 사각이는 소리를 냈다. 바람의 흐름에 따라 제 몸에 붙은 잎을 떨어내며, 가벼워지는 가을의 나무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하는 내내, 길을 따라 심긴 나무들이 가을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미술관 안에 위치한 '테라로사(Terarosa)'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테라로사는 대한민국 스페셜티 커피의 시초로서, 이미 정평이 난 커피 브랜드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입점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 과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테라로사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카페가 있긴 했지만, 특별히 눈길을 끄는 곳은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미술관 안에 카페가 있는 줄 몰랐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간 관심 밖이었던 위치가, 이제는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는 정문만 입장이 가능해 체온 검사와 QR체크인의 과정을 거친 후, 긴 복도를 거쳐 테라로사 입구에 당도할 수 있었다. 카페 내부는 인더스트리얼 무드가 지배적이었다. 테라로사 특유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면서도 블랙/ 그레이 위주의 색상 선택으로 인해 모던한 느낌이 강했다. 벽면과 책장에는 다채로운 디자인의 서적이 빼곡히 있어, 언뜻 북카페처럼 보이기도 했다.
입구의 좌측으로는 독특한 형태의 신발 오브제들과 함께 테라로사의 원두, 드리퍼, 텀블러, 올리브 오일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원두는 시향이 가능했는데, 향이 어찌나 진하던지 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어 졌다. 기다란 원형 테이블로 나아가 메뉴를 살펴보았다. 머신 추출보다 드립 커피의 종류가 훨씬 다양했다. 핸드 드립은 에티오피아 2종, 온두라스 1종, 과테말라 1종, 코스타리카 1종, 블렌드 1종 등 총 6가지의 원두를 제공했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아이스 주문이 불가했다. 머신 커피는 아메리카노 어센틱, 카페라테,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등이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띈 점은 이곳의 바리스타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남성이었던 적이 많았던 터라 그 모습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순간 흥미로운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전에 어디에선가 테라로사의 여성 직원이 전체 인원의 60%가 넘는다는 것 그리고 1년에 한 번 커피 교육을 위해 해외연수를 보낸다는 것을 들었다. 단순히 커피를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닌, 일종의 문화를 창조하는 기업이 아닐까 싶다.
커피 맛 비교를 위해 코스타리카 카를로스(라즈베리/건자두/밀크 초콜릿/클린 피니시) 아이스와 아메리카노 어센틱(미디엄 로스팅) 아이스를 주문했다. 더불어 오늘의 드립인 과테말라 윌마르(라즈베리/건자두/밀크 초콜릿/클린 피니시)도 주문했다. 베이커리 메뉴는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가능할 정도로 다양했다. 레인보우 파프리카 샌드위치와 햄&트리플 치즈 샌드위치부터 각종 파운드케이크, 치즈 케이크, 티라미수, 크루아상, 퀸 아망, 뺑 오 쇼콜라 등이 있었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쿠키! 쿠키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테라로사답게 말차, 흑임자, 피스타치오&유자 맛의 쿠키가 있었다. 나는 피스타치오&유자, 말차 쿠키와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함께 주문했다.
커피의 맛을 찬찬히 음미하며 비교해보니 내 취향을 결론 지을 수 있었다. 나는 머신보다는 핸드 드립 커피, 그중에서도 산미가 짙은 커피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머신 추출 커피가 드립보다 맛이 진하고 단단했다. 하지만 향이나 풍미는 핸드 드립이 훨씬 우수했으며, 바디감은 맑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산뜻하게 감도는 핸드 드립 커피의 끝맛이 가히 훌륭했다. 식후에 먹는 커피였기에- 입안이 가벼웠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레몬 파운드케이크도 적당히 달고 상큼했으며, 잔뜩 기대했던 쿠키 또한 아쉬울 정도로 탁월한 맛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게는 테라로사 방문 시 '핸드 드립 커피와 함께 쿠키를 곁들일 것'이라는 공식이 남았다.
공간의 다양한 테이블 배치와 구조를 보니, 할 일을 가져와 작업을 하거나 누군가와 수다를 진득이 떨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로서는 창문과 가까운 사각 테이블 자리가 탐이 났다. 바깥으로 미술관의 푸른 중정과 함께 나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은의 <커피와 담배>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손님들마다 선호하는 자기 자리가 있다. 그 자리는 때때로 겹친다. 손님이 늘 앉던 자기 자리를 뺏겨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내 마음이 불안하고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다. 책장 아래 자리를 선호하는 손님이 이런 말을 했다. 커피의 맛은 공간의 합이라고, 이 자리의 오래된 의자, 테이블, 하얀 잔,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 커피의 맛이라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은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구절처럼 내게 안정을 주는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란, 확실히 우리를 기쁘게 한다. 커피의 맛을 더욱 그윽하게 만드는 공간을 찾고 싶다면. @terarosacoff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