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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Oct 20. 2023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SeMA AA)

평창동, 미술관


삶이 어려워 어떤 해석이 필요할수록 정처 없이 걷거나 책을 찾는다. 실체의 돋보기가 되어주는 두 행위로부터 나아갈 뱡향을 종종 엿보곤 한다. 추석 연휴부터 한글날까지 모처럼 생긴 여백의 나날에도 주로 한 일은 걷기와 읽기였다. 어쩌면 내 인생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는 두 눈과 다리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걸어 다리에 단단한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눈에도 무언가를 잘 포착하는 근육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주에는 곧 사라지는 스위스그랜드호텔 방면으로 러닝을 몇 번 뛰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창동에 시선이 가닿았고, 마침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와 삼세영 갤러리에 가고 싶어 메모장에 적어 놓은 사실이 떠올랐다. 평창동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는 이 엔 갤러리가 목적지였다. 언덕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동네라 그런지, 그때 두 발로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도로에는 자동차 바퀴가 구르는 소리만 날 뿐 인적이 드물어 적막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도 어쩐지 도보로 찾아가긴 힘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웬걸, 감사하게도 버스 정류장과 일직선상에 놓인 평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ART ARCHIVES SEOUL MUSEUM OF ART)는 기록과 예술이 함께하는 미술관으로, 올해 4월 평창동에 새롭게 개관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한국 현대미술의 발자취를 좇아 수많은 기록과 자료를 선별해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아카이브를 매개로 한 전시,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사용자와 관계를 맺고 새로운 예술의 틀을 마련한다.


크게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동은 별개의 건물로 위치한다. 메인 입구와 연결된 모음동은 미술아카이브의 보존과 연구,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네 개의 직육면체를 조합한 형태의 모음동은 기존의 경사진 지형을 유지하면서 설계되었다. 경사로에서 이어진 옥상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정원이자 미술관의 내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모음동의 1층과 2층에는 아카이브 라운지와 전시실, 레퍼런스 라이브러리가 있다. 라이브러리에는 국내외 미술 분야 단행본과 연속 간행물, 전시도록, 아티스트북, 독립출판물, 그림책 등을 구비했다. 철학, 문학, 디자인, 건축, 예술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서적을 1층과 2층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모음동과 마주 보고 있는 배움동은 미술아카이브를 매개로 함께 배우고 놀이하는 공간이며, 길 건너에 위치한 나눔동은 카페와 다목적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김용익>으로, 개념주의 미술과 모더니즘 미술 및 공공미술에 걸쳐 다층적인 작업을 전개해 온 김용익의 미학과 태도, 사유와 실천을 망라한다. 김용익이 2000년대부터 전개해 온 생태주의적 관점과 우리 문명, 환경, 삶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후기 작업에 주목한다. 김용익은 당대 사회와 미술, 예술이라는 개념과 상호작용하며 권력화된 제도와 사회에 비평적 시선을 던져왔다. 이번 아카이브 전시에서는 그의 예술세계가 시대와 어떻게 교류했고, 진화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끊임없이 지속하고, 자신이 평생 해 온 미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그의 기록물을 보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감각할 수 있었다.


전시장과 또 다른 전시장 사이의 연결점에 놓인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김용익의 트레이드 마크인 땡땡이를 입은 하얀 벽면과 바닥이 공간에 경쾌한 감도를 더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점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곳을 등지고 잠시 앉아 장욱진의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와 대니 샤피로의 신간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를 뜨문뜨문 읽었다. 그중에서 대니 샤피로의 책 앞머리에 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적혀 있었다. 길을 잃어야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 - 데이비드 살레. 이 문장을 여러 번 곱씹으며 지금 당장 막막하더라도 조금씩 탈출구를 만들고 있다는 믿음으로 정진해야겠다는 결기를 다졌다. 볕이 좋을 때면 산책하듯 이곳에 와서 전시를 관람하고, 라이브러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 듯싶다. 현재 진행 중인 김용익 전시는 11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장소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 101


시간

화-금 10:00-20:00(월요일, 1월 1일 휴무)

토/일/ 공휴일 10:00-19:00(동절기는 18:00까지)


인스타그램

@seoulmuseumof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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