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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ug 28. 2017

La Poursuite du bonheur

63일간의 유럽 여행기(2017)


 인간에게, 적어도 내게는 수면욕, 식욕, 성욕과 더불어 여행욕이라는 제4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여행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지구 밖 우주로도 갈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청춘으로서 지상의 곳곳을 누비고자 하는 욕구는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행복감을 오래오래 느낄 수 있어서. 여행을 하는 순간뿐 아니라 떠나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기억을 되짚어볼 때까지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망라하는 여행의 위력을 나는 잘 안다. 그렇다고 현실의 일상이 지루하고 형편없어 여행을 도피처로 삼는 게 아니다. 나의 일상을 깊이 사랑하지만 무언가를 보고, 배우고, 느끼기 위해 더없이 필요한 것은 넓고 낯선 세상에 나를 내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의 한 부분을 탐험하면서 새롭고 신선한 힘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행복하기 위해(여행하기 위해) 나는 현재의 여러 욕구를 억누르고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만드려 노력한다. 이는 행복을 찾는 여정의 관점에선 어딘가 모순적이고 지난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행복감이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걷고, 말하고, 먹고... 길 위에서의 자유로운 방랑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La Poursuite du bonheur(행복을 찾아서)'라는 불어 표현으로 유럽 여행기의 포문을 열고 싶다. 파리를 시작으로 인터라켄, 루체른, 베니스, 피렌체, 로마, 포르토, 리스본, 세비야, 말라가, 바르셀로나, 니스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5개 나라, 12개 도시를 도는 여정 속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대학시절의 8할을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김화영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가장 아름다운 날들의 덧없는 기쁨'을 마음껏 맛볼 수 있기를. 이제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 2주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그 말은 곧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끌어낼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여서 사전 준비를 꽤나 착실히 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판 정도는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유럽에 대한 여행 정보를 얻는 방법은 도처에 존재한다. 가이드 북부터 어플, 개인 블로그, 카페, 매거진까지. 수준 높은 정보가 쏟아지다 보니 되려 '거기 안 가면 바보!'를 만들어버리는 압박감마저 들기도 했다. 워낙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과 미술사를 관통하는 예술품이 무수히 존재하는 땅인지라 파면 팔수록 갈 곳 투성이었다. 여행 초보자에게 정보의 바다에서 취사선택을 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내가 꿈꾸던 여행과 닮아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 사실 가장 오랜 기간, 일 년의 반을 여행 준비에 투자하면서 포기한 다른 것들에 대해 아픈 감정을 느껴왔다. 나름대로 소망했던 휴학 생활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반년을 떠나보내며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어쩌면 과분한 여행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휴학의 목적과 맞바꾼 63일간의 유럽행 티켓은 공들인 만큼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나날로 채우고 싶어 졌다. 나만의 낙원에서 경험할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그 땅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 에펠탑 밑에서 돗자리 깔고 와인 마시기

2. 파리의 공원, 꽃 시장, 카페, 재즈바 가보기

3.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혹은 렐루 서점에서 책 구입하기

4. 스위스 기차에서 알프스 풍경 보며 일기 쓰기

5. 헤르만 헤세의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그의 발자취 따라가기

6. 로마의 피자 그리고 젤라또 맛집 발견하기

7. 포르투갈 전통음악 FADO를 불러주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8. 포르투 포트 와인 마셔보기(와이너리 투어 하기)

9. 리스본의 28번 트램 타고 골목길 정처 없이 떠돌기

10. 시체스, 니스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 타기

11.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의 클럽 가보기

12.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남부에서 '지중해식 삶' 배우기 (WWOOF를 통해서도)

13. 지중해 바다에서 수영하고 낮잠 자기

14. 로컬 마켓에서 식재료 사서 요리하기

15.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나만의 장소 발견하기



 이번 유럽 여행기는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 여행의 장면을 위주로 구성하고자 한다. 아름답고 진실한 그 순간을 작은 노트 하나에 옮겨 적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친구들과 한 달을 함께 여행한 후, 나머지 한 달간 남프랑스의 농가에서 머무를 'WWOOF' 이야기도 브런치에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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