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마크의 기원

by 길건우
images.png?type=w773

인터넷의 도메인으로 사용되는 앳 마크



14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르카토 누오보(Mercato Nuovo, 신시장) 광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상인과 귀족들, 장난을 치는 은행 종업원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금융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곳에서는 금융 외에도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한가지 기호가 있다. 바로 ‘@(앳마크)’이다.

메르카토 누오보 광장에서 농담을 나누던 상인들은 ‘안포라, anfora'라는 중량 단위를 가리키는 축약 기호로 500년 뒤에 널리 사용되는 ’@‘(앳 마크)를 사용했다. 피렌체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상인들도 그 기호를 사용했는데, 18세기 제노바에서는 무게뿐만 아니라 날짜를 축약하는 기호로도 사용했다. 1503년에 발행된 바르톨로메오 팍시의 <도량형 환산표>에 기록되어 있듯이, 베네치아는 ’온스‘라는 다른 측정 단위를 사용했다. 팍시의 책에 표시된 축약 기호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앳 마크와는 다르게 꼬리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컴퓨터(나중에는 도메인)의 이름과 사용자의 이름을 구분하기 위해 앳마크를 쓰게 된 것은 1971년부터다. 인터넷이 아직 아르파넷(ARPAnet)이라고 불리던 시기에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은 전자우편을 개발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앳 마크를 사용하게 됐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 그것이 컴퓨터 자판에서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기호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쩌다 그 기초가 컴퓨터 자판에 들어가게 된 걸까? 그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라 사피엔차 대학교의 과학사 교수 조르조 스타빌레는 2000년에 신기술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프라토의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가 남긴 문서 보관소에서 고문서에 사용된 기호들을 탐색하다가 “@ = anfora"라고 쓴 글귀를 발견했다.

Arpanet_logical_map%2C_march_1977.png?type=w773

Arpanet logical map, march 1977



세비야에 있던 피렌체 상인 프란체스코 라피가 1536년 5월 24일 로마의 필리포니 디 필리포 스트로치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의 문장이 발견된다. “큰 포도주 통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포도주 1안포라는 70~80두카트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안포라는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 기호로 표기되었다.

%EB%91%90%EC%B9%B4%ED%8A%B8%28Ducat%29_%EB%B2%A0%EB%84%A4%EC%B9%98%EC%95%84_%EA%B3%B5%ED%99%94%EA%B5%AD_%EA%B8%88%ED%99%94.jpg?type=w773

두카트(Ducat) 베네치아 공화국 금화


스타빌레 교수는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는 1492년 살라망카에서 발행된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의 스페인어-라틴어 사전에서 스페인의 중량 단위 ‘아로바, arroba'는 라틴어 ’암포라, amphora'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 기호를 ‘아로바’(4분의 1을 의미하는 아랍어 중량 단위, ar-roub에서 유래했을 것이다)라고 부른다.

이후 @ 기호는 앵글로색슨인들의 상업계로 들어갔으나 의미가 달라져서, ‘가격’을 표시하는 기호가 되었다. 여기서도 의미 있는 행적을 발견할 수 있다. 워싱턴의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된 조지 워싱턴의 문서 가운데 1779년 9월 20일의 청구서를 보면, 종이와 잉크 등 사무용품의 가격을 표시하는 난에 @ 기호를 앞세우고 있다. 그 상거래용 기호는 먼저 타자기의 자판으로 이동했고, 이후 컴퓨터 자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레이 톰린슨은 잠자고 있던 기호를 발견하고 사용함으로써 사이버 공간에서 @ 기호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참고 자료

‘돈의발명’,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책세상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