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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

영화 <어른도감>과 <비욘의 아내>

'어른'이 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른이 아이 같은 행동을 하면 '철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이란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을 말한다. 사리는 무엇이 옳고 틀린 줄 알며 그것을 구별하여 가르는 걸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어른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남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하며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세상에 어울리는 존재로 만드는 이에게 주어지는 명함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아직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철없는 어른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제비족으로 살아가며 중학생 조카를 속여먹고 다른 한 명은 가정은 부인에게 내팽개쳐 두고 자살을 꿈꾼다.


                


 <어른도감>의 재민(엄태구 분)은 형의 장례식 날 만난 조카 경언(이재인 분)의 집을 찾아간다. 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 14살 조카를 불쌍히 여기며 힘이 되어줄 것만 같은 재민. 그는 경언에게 밥을 차려주고 핏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듬직한 삼촌의 모습에 경언은 재민을 후견인으로 선택한다. 후견인이 된 재민은 형의 보험금을 가지고 사라진다. 삼촌을 찾아 나선 경언은 재민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과 그가 제비족이라는 걸 알게 된다.

  

 철없는 삼촌은 조카를 속이고 형의 보험금을 훔친 건 물론 경언을 자신의 딸로 속여 약국을 운영하는 점희(서정연 분)에게 접근한다. 본인은 현실적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현실을 가장 모른다. 스스로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범죄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재민. <비욘의 아내>의 오타니(아사노 타다노부 분)는 재민처럼 범죄를 저지르진 않지만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는 책임감 없는 남편이다. 소설가인 그는 술독에 빠져 살며 술 때문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빚을 갚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육아를 홀로 책임지는 건 아내 사치(마츠 다카코 분)다. 이런 아내의 고생을 모르는지 오타니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다. 그는 아키코(히로스에 료코 분)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며 그녀에게 같이 자살하자고 말한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아무 여자나 품는 건 물론 그 여자에게 죽음을 함께 하자 말하는 오타니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는 남편이다.

  

 재민과 오타니, 이 두 남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점이다. 재민은 아이돌 가수였다. 요즘이야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 그의 젊은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다. 재민은 아버지와 형에 의해 꿈을 이루지 못했고 집을 나와 버렸다. 재민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는 아이돌 시절 염색한 머리로 연습을 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재민은 그 시절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했고 몸만 큰 어른이 되어버렸다.


                


 <비욘의 아내>는 전후 패망한 일본인들의 무력함과 고독함을 다룬 작품들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다자이 오사무 작품들 속 주인공은 작가 본인이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무능하며 동시에 패배의식에 젖어있다. <비욘의 아내>가 다루는 시대 역시 그렇다. 문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없는 시대, 먹고 살기에도 바쁜 시대에 소설가는 사치스러운 직업이다.

  

 이런 시대에 소설가를 택한 오타니는 세상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두 번째는 하늘이다. 재민은 경언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한밤중에 산으로 데려간다. 그가 조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검은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다. 별은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는 작전이 성공하면 가게를 꾸릴 생각을 한다. 남을 속이고 이용해 먹지만 무언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첫 번째 꿈이 무너진 재민은 세상에 정착하기 힘들었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제비처럼 되어버렸다.

  

 오타니는 애인에게 자살 이야기를 하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이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본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이 작품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세계를 영화 전반에 걸쳐 표현했다는 점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행위는 이상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볼 수 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타니 역시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그에게 자살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증명과 같다. 그는 가정이라는 공간에서는 자신을 찾지 못한다. 돈 한 푼 못 벌어오는 가장의 모습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그래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목숨과 관련된 자살까지 시도한다. 하늘을 올려다 본 건 지상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의 공간이 하늘은 아닐까 하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세 번째는 그들이 먹은 것이다. 오타니는 자살 소동 후 아내 옆에서 조그마한 열매를 먹는다. 아이를 주라고 친척이 싸준 걸 자신이 먹는다며 본인의 한심함을 자책한다. 그는 글을 써서 명성도 얻고 돈도 벌고 싶지만 패전 후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하루하루를 망각으로 보내기 위해 술을 마시며 비참한 자신을 지우기 위해 새로운 여자를 껴안는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게 어른이지만 오타니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시대가 자신을 맞춰주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그의 어린아이 같은 면모는 아이의 간식을 대신 먹으며 완성된다. 재민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는다. 무얼 먹느냐는 질문에 그는 외로움이라 답한다. 가족을 떠난 그는 사람을 배신하며 살아왔다. 어린 조카를 배신할 만큼 인면수심이지만 세상이 한 번도 따뜻함을 준 적이 없기에 그 역시 따뜻함을 베풀 줄 모른다.

                


 먹을 게 없어 외로움을 먹는 어른과 아이의 간식을 먹는 어른. 영화는 이 철없는 두 어른을 껴안는다. <어른도감>에서 '도감'은 그림이나 사진을 엮어 실물 대신 볼 수 있는 책을 의미한다. 제목의 의미대로 생각하자면 경언에게 도감이 되는 어른은 재민이 되어야 한다. 대신 영화는 철없는 재민이 경언과 소통하며 서로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어른이라고 항상 답을 아는 게 아니며 성장이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경언에게 재민이 나타나준 거처럼 경언은 재민 옆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어른은 혼자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임과 의지를 짊어지는 존재가 어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 성장한다. 사치는 본인을 자책하는 오타니에게 "인면수심이라도 괜찮지 않나요? 우리들은 살아있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의 '우리'에는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치의 사랑은 철없는 남편을 질책하거나 깨달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비록 어른이 되지 못했더라도 혹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책임감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나가며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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