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모니움>
일본 후카다 코지 감독은 국내 영화제에 많은 작품이 소개됐지만 정식 개봉은 한 번도 하지 못한 감독이다. 30대의 젊은 감독인 그는 수많은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했고 수상도 했다. 영화 <하모니움>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제11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이 작품은 삶의 '조화'를 어둡고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극중에서 토시오(후루타치 칸지 분)는 단란한 가정을 이룬 가장이다. 그는 출소한 친구 야사카(아사노 타다노부 분)를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킨다. 야사카는 오르간 연주를 통해 토시오의 딸 호타루(시노카와 모모네 분)와 친해지고 아내 후미에(츠츠이 마리코 분)와도 가까워진다. 성실하고 예의바른 야사카는 그들 가족의 한 일원처럼 자리 잡는다. 그리고 후미에는 야사카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된다. 야사카의 자기 변명에 넘어간 후미에는 그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다.
한 출소자가 사랑으로 가정의 일원이 되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야사카와 후미에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동그란 날계란은 껍질에 쌓여 있을 땐 아름다운 타원형을 유지하지만 깨지면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빠져나온다. 후미에가 야사카의 애정공세를 거부하자 야사카는 딸 호타루에게 상해를 입힌다. 그 사건으로 호타루는 뇌성마비 환자가 되고 야사카는 사라진다.
토시오 가정에 닥친 이 불운을 다룬 영화의 제목은 왜 '조화'를 의미하는 '하모니움(HARMONIUM)'일까. 이에 대한 의문은 야사카가 사라진 후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밝혀진다. 시간이 지난 후 호타루는 성인이 되지만 여전히 휠체어 신세고 후미에는 남자와의 신체 접촉을 꺼린다. 그리고 토시오는 사람을 고용해 야사카를 찾아다닌다. 그들의 공장에는 타카시(타이가 분)라는 청년이 새 직원으로 들어온다. 토시오는 타카시의 입을 통해 그가 야사카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 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원죄에 의해 죄책감을 느끼고 토시오는 그를 통해 야사카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타카시에게 호의를 보이던 후미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타카시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토시오는 자신이 품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가 범죄자인 야사카를 집에 들인 이유, 살인을 저지른 그를 직장으로 데려온 이유는 토시오도 '공범'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호타루가 저렇게 된 게 자신의 죄 때문이라 말한다. 죄에는 무게란 게 있다. 그 무게는 죗값을 치렀을 때 사라진다. 토시오와 야사카는 같은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죗값은 야사카만 받았다. 토시오는 이에 대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고 그 짐은 딸의 평생의 고통과 함께 내려놨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후미에가 야사카의 환영에 시달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본인이 야사카를 자극했기에 딸이 벌을 받았다 생각하는 후미에는 딸을 극진히 돌보는 것만으로는 이 죄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카시가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네 아비 앞에서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후미에의 말에 타카시가 "난 죽음도 각오하고 있다"고 답한 건 허언이 아니다. 그가 죽음을 각오한 건 아버지의 죄를 지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 죄의 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불해야만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추구하는 이런 '조화' 속에서 토시오와 야사카는 인간이 품은 죄의식을 나타낸다.
야사카가 입은 새하얀 옷과 반듯한 차렷 자세는 원죄를 지우기 위한 모습처럼 느껴진다. 새하얀 옷으로 죄를 씻어내고 굽힘이 없는 자세로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 야사카라는 존재는 죄의식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지우기 위해 애쓰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그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처럼 야사카라는 존재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토시오는 야사카를 직장에 들임으로 속죄를 하려 든다. 하지만 야사카라는 죄의식은 속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토시오의 마음에 복수를 불러일으킴으로 모든 죄를 씻어내는 예수의 사랑과 같은 구원이라는 용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덕목처럼 여겨야 되는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은 종교가 말하는 구원이나 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밀양>에서 신애(전도연 분)는 자신의 아들을 납치하고 죽인 도섭(조영진 분)을 종교의 힘으로 용서하지만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편안한 표정으로 있는 도섭을 만나자 그 마음을 접는다. 그녀는 불량배들에게 당하는 도섭의 딸을 보고 구해주지 않는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원했던 것이다. 나쁜 짓을 한 도섭의 죗값을 그 딸이라도 받기를 말이다. 그게 그녀가 생각하는 삶의 조화임을 알 수 있다.
인간 내면의 죄의식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과 상처가 있어야 치유된다는 것을, 속죄와 침묵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음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야사카는 마치 악령처럼 잡히지 않는 형체, 즉 죄의식으로 토시오의 가족을 괴롭히고 호타루는 고통과 안도를 품은 죄의 값이라는 형태로 남아 어둡고 슬픈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