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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도 같았던 청춘의 뮤직드라마 <레토>



▲<레토>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 세미콜론 스튜디오

 
1981년 소련 레닌그라드의 록 클럽. 두 여성이 록밴드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통해 남자화장실로 들어온다. 정식 입구가 아닌 뒷구멍을 통해 입장한 그녀들은 조용히 앉아 공연을 구경하는 관객들 사이 응원문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꺼내든다. 그리고 관리요원은 이를 제지시킨다.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도입부는 <레토>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할 수 있다. 당시 소련의 젊은이들에게는 록에 관한 열정과 저항의 의지가 있었지만 배출구는 허락되지 않았다.
 
록 음악이 '미국적인 것'이라 여겨지던 소련에서

소련에서 가장 유명했던 록그룹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다룬 <키노>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첫 번째는 당시 소련에서 록음악을 바라보는 현실이다. 미국과 소련이 사상의 문제로 대립을 펼쳤던 냉전시대 당시 록음악은 미국적인 것이라 여겨졌다. 젊은이들이 미국 문화에 빠져 사회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졌던 게 당시의 시선이었고 록에 담긴 저항과 열정은 지양해야 될 요소로 여겨졌다.
 
레닌그라드의 록 클럽의 모습은 이런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록밴드는 체제의 선전을 위해 노래해야 되며 가사를 검열 받아야 한다. 관객들은 마치 클래식 공연에 온 듯 가만히 의자에 앉아 무대를 감상한다. 공연장 운영자는 록음악에 대한 대중적인 편견을 줄이고자 공연장을 열었다고 하지만 그 방식으로 택한 건 체제에 대한 선전과 건전한 음악의 지향이다. 그녀가 록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건 검열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레토>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 세미콜론 스튜디오

 
밴드는 가사의 검열에 대해 얼렁뚱땅 '체제선전'이라고 둘러대고 운영자는 가사가 내포한 의미 따위는 생각도 않은 채 그들의 변명을 모두 받아들인다. 이름만 록밴드일 뿐 록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없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청춘들에게 그들의 에너지를 쏟아낼 문화가 생성되기 힘든 환경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빅토르 최와 마이크, 그리고 나타샤의 묘한 삼각관계이다.
 
당시 마이크는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잘 나가는 밴드의 보컬이었고 빅토르 최는 키노로 성공을 거두기 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가던 뮤지션이었다. 마이크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빅토르 최가 록 클럽에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빅토르는 나타샤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타샤 역시 독특한 자신만의 색을 지닌 빅토르에게 빠져든다. 나타냐의 연인이었던 마이크는 이를 알고 자리를 비켜주고자 한다.
 
이들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묘하게 진행된다. 무엇 하나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빅토르를 남의 여자를 빼앗는 악당으로 볼 수도 없고 마이크를 연인을 빼앗긴 처량한 남자로 볼 수도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나타샤가 지닌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청춘의 젊음이 넘치는 빅토르와 마이크처럼 나타샤 역시 본인만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남성의 선택과 마음에 따라 갈등을 겪기보다는 본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 어떨 때는 빅토르에게 마음을 열다가 다시 마이크에게 돌아가기도 하는 등 본인의 감성과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 그리고...

세 번째는 가정(IF)을 통한 뮤직비디오식의 연출 방식이다. <키노>의 연출은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세련되었다. 토킹 헤즈, 데이빗 보위, 이기 팝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흑백의 화면에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담아낸다. 애니메이션 효과는 물론 뮤지컬처럼 행인이 노래를 부르는 등 형식에 있어 자유로우며 장면 하나하나가 주는 스타일리시한 느낌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크게 다가온다.
 
이런 연출의 비결은 이 모든 장면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가능하다. 영화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함으로 인물들이 지닌 에너지를 표출시킨다. 빅토르와 마이크 일행이 전철에서 검문을 하는 역무원을 상대로 저항을 펼치는 장면이나 록 클럽에서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들고 일어나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저항과 청춘의 에너지를 펼친다. 하지만 장면 뒤 한 인물이 등장해 '이건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려준다.
 
이 가정된 상황은 그들이 품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넘치는 젊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을 통한 그들의 저항은 TV 속 뮤직비디오처럼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못한 일이다. 다만 그들에겐 그럴 의지와 힘이 있었음을 가정된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제목 '키노'와도 연관되어 있다. 밴드의 이름이기도 한 키노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의미이다.
   


▲<레토>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 세미콜론 스튜디오

 
젊음의 열기와 저항은 인생에 있어 여름이란 계절처럼 짧은 구간에 속한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처럼 강렬하다. 빅토르 최가 마이크를 처음 만난 바닷가 장면은 이런 에너지를 보여준다. 옷을 벗고 바닷가에 뛰어드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은 여름 그 자체이다. 그래서 빅토르 최가 바닷가에서 처음 들려준 'Summer'와 이후 엔딩 크레딧에서 등장하는 키노의 노래 'Summer Will Be Over Soon'은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빅토르 최가 짧은 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그 짧은 생 안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소련을 대표하는 록 밴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정말 '키노(여름)' 같았는지 모른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칸 사운드트랙 필름어워드 상'을 수상한 만큼 귀를 사로잡는 음악과 세련된 영상미, 여기에 청춘의 열정과 낭만을 흑백의 화면에 매력적으로 담아낸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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